아이를 키우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part 3

응급의 정도

by YJ Anne

10년 넘게 호주에 살고 있는 동안 내가 경험한 퍼블릭 병원은 감사하게도 아이를 낳을 때뿐이었다.

호주의 의료 체계는 기본적으로 퍼블릭은 무료이거나 저렴한 비용이다. 일부 무상으로 지원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만약 사설 보험이 있다면 커버가 가능하다.


우리는 영주권을 취득하고 나서 사설 보험은 모두 해지했기에 현재는 호주 정부에서 제공하는 공공 의료 서비스만 받을 수 있다. 퍼블릭은 무상이지만 응급의 정도에 따라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이 다르다. 아주 위급한 상황이라면 바로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반면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치료라면 길게는 1년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우리 남편도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퍼블릭 병원에 예약해 놨는데 1년이 다되어 가도록 아직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1호를 임신했을 때, 매번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나의 건강 상태는 상당히 양호했다. 몸무게도, 늘어난 배의 크기도 모두 표준범위 안에 있어서 25주에 하는 정기 초음파 검진이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출산할 때 아이의 몸무게가 4.73kg의 큰 아이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감사하게도 아주 튼실했던 1호는 우렁차게 울면서 건강한 모습으로 세상을 맞이했고 우리는 이 모든 의료 서비스가 무상이라는 것에 진심으로 놀랐다.


살면서 언젠가 병원은 가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아픈 아이를 품에 안고 응급실로 뛰어가게 될 줄은 미안하지만 상상도 안 해봤다. 아니 상상조차도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었다.




어린이 병원 응급실에서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다되어 가니 아픈 2호의 짜증도 점점 레벨이 올라갔다. 그리고 두 시간을 안고 서 있으려니 내 체력도 바닥을 치며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끝도 없을 것 같은 기다림 속에 허우적대고 있는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처럼 젊은 남자 의사가 다가왔다.


그는 나에게 아이가 언제부터 어떻게 아팠는지의 자초지종을 물었고 나는 잘하지 못하는 영어지만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그런데 듣고 있는 의사의 얼굴에서 ‘아이의 감기가 심해져 폐렴으로 왔다 해도 심하지는 않을 것 같네’라는 생각이 자막처럼 읽혔다. 왜냐하면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내내 2호는 울기도 울었지만 나랑 장난을 치며 놀기도, 또 같이 노래를 부르며 낄낄대기도 했기에 겉으로 보기에 아이의 상태는 양호해 보였다.


곧이어 의사는 청진기로 아이의 숨 쉬는 소리를 들어보더니 나에게 설명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왼쪽 폐에서 공기 통하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엑스레이를 찍고, 결과와 함께 폐 전문의가 도착하면 우리를 만나러 올 거라 했다. 그의 안내를 받아 나는 2호를 안고 응급실 복도를 걸어 촬영실로 들어갔다. 촬영하시는 분은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이하셨다. 상냥한 목소리로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그분 덕분에 2호는 처음 찍어보는 엑스레이가 낯설고 무서웠을 텐데도 긴장하지 않고 순조롭게 촬영에 협조했다.




응급실에 있는 동안 오고 가는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어린이 병원에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본래도 호주는 지나치는 낯선 사람들과도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문화이지만 이곳, 어린이 병원에서는 특히 아이들에게 더 밝게 웃어주며 친절하게 인사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눈이라도 마주쳤는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지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다가와 도와줄까? 괜찮아? 를 확인한 후 다시 가던 길로 돌아갔다.


아이를 안고 있어야 했던 두 시간 동안 내 두 팔은 후덜후덜 했지만 외딴섬에 떨어진 것처럼 아이와 단 둘이 있다는 외로움이 들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 분들의 따뜻한 친절 덕분이었다.




엑스레이를 찍고 난 후 20분쯤 흘렀던 것 같다. 2호도 나도 체력적으로 지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아이는 아침에 한 두 모금 마셨던 딸기 우유가 오늘 먹은 음식의 전부였고, 나는 오후 4시가 다되도록 한 끼도 먹지 못했다.


당시 우리 식구 모두 독감에 걸린 상태였는데 2호가 제일 심했고, 그다음으로 상태가 좋지 않았던 사람이 나였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엄마였고, 내 아이가 너무 아프니까 내 몸이 아플 새는 없었다. 그래서 줄줄 흘러내리는 코를 연신 들이마시고 닦아내며 간신히 정신줄을 붙들고 있었다.


아이도 이제 정말 한계점에 도달했는지 연신 짜증이었다. 목이 빠지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에게 컴퓨터가 달린 트롤리를 끌고 파란 수술복을 입은 한 의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폐 전문의라며 자신을 소개한 의사는 나에게 다시 이것저것 질문을 하면서 엑스레이 결과를 알려줬다. 엑스레이 결과는 참담했다.


정상적인 폐는 검은색이 대부분인데 2호의 폐는 하얀색이 대부분이었다. 척추를 중심으로 왼쪽폐는 검은 부분이 아얘 보이질 않았고, 오른쪽도 아래쪽은 하얬다. 의사는 현재 왼쪽의 폐에 물이 거의 다 차서 숨쉬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태이니 바로 드레인을 장착하는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 어린아이라서 링거 바늘을 팔에 꽂아 두기가 어려울 테니 가슴에 있는 혈관을 잡아서 피를 뽑기도 하고 약을 넣기도 하는 주사 바늘을 꽂아야 한다고도 설명했다.


그리고 나에게 많은 아이들이 이 정도의 상태로 병원에 찾아오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있는데 우리 2호는 잘 대기하고 있는 모습에 엑스레이 결과를 보기 전까지는 얼마나 상황이 위급한지 전혀 짐작도 못하셨다고 하셨다. 전문가도 그 정도니 부모가 봐서도 잘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너무 미안해하거나 걱정하지 말라고도 얘기하셨는데 아마도 설명을 하시는 내내 내 표정을 읽으신 것 같다.


의사의 설명을 듣는 내내 사랑하는 내 아이가 이렇게 아픈데 그동안 나는 뭐 하고 있었는지, 왜 제때에 눈치채지 못했는지, 왜 조금 더 일찍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는지… 미안하고 또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나마 오늘 병원이라도 데리고 갔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쓸어내린 가슴을 또 쓸어내리고 또 쓸어내렸다.


설명해주신 의사 선생님께서 자신이 2호의 수술을 담당한다고 하시며 곧 수술실로 이동할 거라 말씀하셨다. 시간은 대략 2시간 남짓 걸릴 예정이라고 하셨다.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내가 아이를 안고 침대에 앉아 있는 채로 수술실을 향해 침대를 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아이는 침대에 올라앉아 이동하는 이 상황이 재미있게 느껴졌는지 울지 않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의 침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을 더 올라가서 기다란 복도를 지나고 드디어 수술실로 보이는 문 앞에 멈췄다.


수술 담당 간호사와 여러 다른 의사들이 침대를 에워쌌고, 차례차례 나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면 아이에게 어떤 처치를 하게 되는지, 얼마 정도 후에 아이가 깨어나는지, 수술이 끝나면 어디에서 아이를 만날 수 있는지 등을 설명하면서 앞으로 두 시간 정도 걸릴 예정이니 어서 집에 가서 샤워하고 짐을 챙겨 오라고 하셨다.


이미 담당 의사에게서 적어도 2주 정도는 입원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은 터라 각오는 하고 있었다. 내가 상황을 이해하고 서류에 있는 보호자 칸에 사인을 하자 침대는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엄마가 왜 자기를 침대에 혼자 남겨두고 내려가는지 당황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애타게 엄마를 바라보며 손을 내미는 아이에게 간호사가 마스크를 씌우고 주사를 놓았다.


주사기에 있는 하얀 액체가 줄어드는 순간 아이는 온몸에 힘이 풀렸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축 늘어진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


알고 있었다. 수술을 하기 위해 마취를 했을 뿐이고, 수술이 끝나면 깨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그런데… 그런데… 자꾸 내 눈에는 온몸에 힘이 풀리던 아이의 모습이 도돌이표로 돌아왔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마음은… 아이를 다시 못 볼까 봐 너무 두려워서 문이 닫힌 수술실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현실이 될까 봐, 또 현실이 되지 않을까 봐 무서워서 덜덜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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