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병원에 입원하다-part 1

내 아이가 폐렴이라니

by YJ Anne

2호를 병원에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분명 내게 익숙한 동네 길인데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다. 집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애타게 엄마를 기다릴 1호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도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었다. 부모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부모보다 더 불안감을 느낀다. 지금은 속상함에 눈물 지을 때가 아니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아이들을 돌봐야 할 때였다.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남편과 1호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스렌지 위에는 전날 아이들을 위해 요리한 된장국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아… 된장국 냄새…’


된장국의 구수한 냄새가 내 코에 들어차는 것이 느껴지며 아주 잠깐 마음이 편안해졌다. 맑게 끓인 된장국은 나에게 삶이 짜증 나고 힘들 때마다 생각이 나는 음식이다. 많은 재료를 넣는 것보다는 적은 재료로 간단하게 끓이는 걸 좋아하는데 집에 들어서는 순간 이 구수한 냄새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마치 어제의 내가 미리 알고 오늘의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 준비한 듯한 느낌이랄까.


입 안 가득 침이 고였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나의 허기를 채우는 것보다 아이가 언제 수술이 끝나서 깨어날지 모르니 최대한 빨리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겨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남편에게 대충 준비할 목록을 안겨주고 나는 번개처럼 씻고 왔다. 2호의 내복과 간식, 병원에서 밥이 나오겠지만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최대한 2호가 좋아하는 것 위주로 챙겼다.


집으로 오는 발걸음도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도 누가 무게추를 줄줄이 달아놓은 것 마냥 무겁기만 했다. 집에 아빠와 둘이 남아 있을 1호가 걱정되고, 1호를 챙기며 일도 모조리 도맡아 해야 하는 남편도 걱정됐다. 그리고 지금 내가 도착하는 발걸음에서 만나게 될 2호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얼마나 아파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 두려움이 끝도 없이 내 마음 깊고 어두운 곳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병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2호의 수술이 끝나고 지금 임시 병동으로 나와있으니 이제 만나러 와도 좋다는 연락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큰 병원이라 그런지 상당히 미로 같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태어나서 처음 와보는 이 복잡한 병원에서 나는 한 번에 내 아이가 있는 곳을 잘 찾아갔다. 평소 길치에 방향치인 내가 헤맴 없이 찾아갔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여기구나 하며 병동 문을 여는 순간 그곳에 내 아이가 있었다. 가슴과 옆구리, 팔에 온갖 줄을 매단 채로 침대에 앉아 두려운 눈망울로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었다.


‘아… 내 새끼’하며 탄식이 절로 나왔다. 혹여라도 안다가 아이라도 아프게 할까 봐 선뜻 안을 수도 없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옆에 있던 간호사들이 선을 하나씩 잡아주며 내가 침대 위에 올라앉아 아이를 안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며 안고 다독여 주라고,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다정히 설명해 줬다. 엄마 품에 안긴 아이는 단번에 울음을 그쳤다. 엄마를 놓칠세라 품에 꼬옥 안은 녀석은 그제야 병실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진정되니 나도 눈길을 돌려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침대 바로 옆에 보이는 모니터에서는 아이의 심박수와 산소포화도를 측정하고 있었고, 옆구리에 호스로 연결되어 폐에 찬 물을 빼내는 드레인, 수액과 항생제를 맞고 있는 링겔들과, 버튼을 눌러 진통제를 투여하는 장비가 아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한 남자 간호사가 다가와서 조금 있다가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촬영 장비가 도착할 예정이라고 알려주었다. 엑스레이를 찍어서 수술로 장착한 드레인 호스가 제 위치에 잘 있는지도 확인할 계획이라 했다. 아이가 놀라지 않게 침대 위에 장비를 올리고 찍을 테니 걱정 말고 아이를 진정시켜 주면 된다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했다. 아이의 몸에 주렁주렁 매달린 줄들을 염려하는 나의 눈빛을 읽고 안심시켜 주는 것 같은 이 친절함이 고마웠다.


곧 엑스레이 장비를 싣고 두 사람이 도착했다. 숙련된 솜씨답게 그들은 침대 한쪽에 촬영을 위한 패드를 올리고 나에게 임신 여부에 대해 물었다. 나는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안심을 시킨 후 아이를 조심히 안아 들고 침대 위에 놓인 패드 위에 아이를 눕혔다.


혹여라도 아이가 무서워서 울며 발버둥 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는데 다행히 엄마가 옆에 있어서인지 아이는 생각보다 순순히 응해주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엄마와 함께라면 주사도 잘 참아내는 녀석이 매번 참으로 기특했는데 이 순간도 그랬다. 울지 않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 잘 누워있어 준 것에 얼마나 고맙고 또 대견스러운지…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촬영이 끝난 후 나와 아이는 침대에 앉은 채로 또다시 기차 여행을 시작했다.

병실로 이동하는 길, 우리는 칙칙폭폭 증기 기관차 소리를 내며 신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복도에서 보이는 정원을 바라보던 아이는 “짹짹”이라고 소리치며 손가락으로 어느 방향을 가리켰고, 우리는 함께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앵무새에게 인사했다. 나에겐 이와 같은 순간이 참 보물 같다. 몸도 마음도 힘들지만 순수함이 넘치는 아이의 장난기로 잠시 잠깐 진통제를 맞듯이 잊어버릴 수 있는 소중한 찰나.


어린이 병원 침대 기차 기관장 님은 우리를 1인 병실로 안내해 주셨다. 우리 집 아이들은 소리통이 참 큰데 그중에 2호는 형보다 울림이 더 크다. 그래서 이 통 울음소리가 다른 아이들을 힘들게 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이 많았는데 1인실이라니. 신이 도운 걸까? 운이 좋은 걸까? 생각하며 병실에서 지내는 동안 오가며 다른 병실들을 보게 됐는데 이때 깨달은 것이 있다. 이 병원은 통제가 잘 안 되는 어린아이들을 대체로 1, 2인 실로 배정하고 다른 아이들을 배려할 만큼 큰 아이들이 다인실에 배정되어 있었다. 공립 병원인 만큼 정말 효율적으로 환자를 돌본다는 사실에 감탄하며 감사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시간은 어느덧 9시였다. 아이는 주변이 조용해지자마자 긴장이 풀렸는지 잠시 칭얼대다가 이내 내 품에서 잠이 들었다. 한쪽 팔로 아이를 안고 있어서 나는 쉽사리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이의 몸에 연결된 줄이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어서 팔베개를 빼고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도 도저히 혼자서는 불가능해 보였다.


점점 아이의 머리 무게로 인해 감각을 잃어가는 왼쪽 팔이 내 기억에서 잊혀져 갈 즈음 담당 간호사가 찾아왔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호출 버튼을 눌러달라고 했다. 이 말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나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바로 얘기했다. 가능하다면 지금 침대에서 내려오고 싶다고, 좀 도와달라고.


몸에 부착된 여러 갈래의 줄이 분명 아프고 불편할 텐데 아이는 움직이지도 않고 곤히 잠이 들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나에게도 피로가 폭풍처럼 몰려왔다. 이제 도저히 버틸 수 없어 눈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요란한 기계음이 내 귀를 때렸다.


어떤 경고음인지 찾아보니 아이의 심박수와 산소 포화도를 보여주는 모니터에서 심박수가 깜빡이면서 빨간 경고등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깜빡이고 있었다.


이윽고 담당 간호사가 달려왔다. 모니터의 심박수를 확인한 간호사는 나에게 곤히 자는 아이를 깨워야 한다고 했다. 나는 당황했다.


수술을 마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고, 그 힘든 과정을 견뎌내느라 이제야 지쳐 잠이 든 아이를 바라보니 이건 미친 짓 같았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꼭 깨워야 하나요?라는 표정으로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간호사는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우리가 처한 상황을 차분히 설명했다.


물론 아이가 곤히 잠이 들어서 심박수가 내려가기도 하겠지만 다른 아이들에 비해 우리 2호가 심박수가 낮은 편인 것 같고, 혹시라도 아이를 깨웠는데도 심박수가 올라가지 않으면 굉장히 위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당장 응급으로 처치가 필요한 상태일 수도 있으니 경고음이 들릴 때마다 아이를 깨워서 다시 심박수가 올라가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간호사의 설명을 듣고 보니 미동도 없이 곤히 자는 아이의 모습에서 의식이 없던 아이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수술실에서 힘없이 침대 위로 쓰러지던 아이의 모습이 내 눈앞에 다시 재생되면서 내 심장은 또 한 번 쿵 하고 내려앉았다.


수술이 잘 끝났다는 안도감에 쓸어내렸던 가슴은 다시 불안함으로 뛰어댔고 나는 5~10분 간격으로 울리는 경고음을 들을 때마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아이를 깨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병원에 입원한 첫날밤, 아이도 나도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하고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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