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병원에 입원하다-part 2

냉탕과 온탕 그리고 불지옥

by YJ Anne

악몽 같았던 하루가 지나고 해가 밝았는데 밤새 잠들지 못한 몸은 침대에 단단히 묶여 있는 것처럼 도저히 일으킬 수가 없었다. 아이도 나도 아침이 무르익어서야 1~2시간 간신히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잠깐의 달콤한 잠 덕분일까? 자고 일어난 아이의 표정은 어제보다 한결 나아 보였다. 아이의 표정이 밝으니 내 마음도 덩달아 환해졌다. 더 기뻤던 이유는 이제껏 식욕이 없어서 음식 앞에서는 뭐든 안 먹겠다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던 아이가 아침 식사가 담겨있는 트레이를 보고 나서 연신 ‘맘마’를 외쳐대는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를 닮아 한식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병원 식단이 입맛에 맞을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여기는 호주니까. 다행히 식사와 함께 딸려온 종이 한 장에는 다음날 제공될 메뉴가 적혀있었고,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아이가 좋아하는 메뉴는 거의 없어서 어디에 동그라미를 쳐야 할지 내 손 안의 펜은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만 했다. 최대한 아이가 집에서 먹었던 것으로 선택해서 재빨리 제출했다.


배가 고팠는지 하얀 식빵을 가리키며 달라는 아이에게 딸기잼을 발라 주니 넙죽넙죽 잘도 먹었다.

아… 이제 됐다. 잘 먹는 모습을 보니 짙은 안개 같은 걱정이 싹 가셨다.


순식간에 식빵 2장을 다 먹은 녀석은 빵이 없어진 접시를 보고 당황하고 분노해 울음을 터트렸다. 당장 더 먹고 싶어 하는 아이를 어찌 달래야 하나, 혹시 간호사에게 부탁하면 가능할까?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때마침 담당 간호사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하고 물어보며 들어온 그녀에게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다 듣고 난 그녀는 아이가 잘 먹는 건 너무나 기쁜 일이라며 환하게 웃으며 ‘바로 가져다줄게’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채 2분도 지나지 않아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착한 그녀의 손에 하얀 식빵 2장이 담긴 접시가 들려 있었다.

고마운 마음을 아는지 아이는 식빵 2장을 딸기잼과 함께 싹싹 먹어치웠다.



접시를 깨끗이 비우고 나니 10시가 조금 안 됐다. 테이블을 정리하며 잠시 숨을 돌리고 있을 때 담당의사들의 회진이 있었다. 머리가 새하얀 대장 의사 선생님과 함께 수술을 집도 했던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수술은 잘 끝났고, 아이가 잘 먹었다는 소식을 들으시더니 잘하고 있다며 양손으로 엄지 척을 연신 들어 올리셨다. 배땅땅 기분 좋은 아이도 방긋 웃으며 귀여운 엄지로 화답했다.


아이가 아팠던 시기는 내 평생 마음 한 켠에 남아 있을 아픈 흉터가 되겠지만 이렇게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귀한 배움이기도 했다.


일주일 만에 내 아이의 입에서 먹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치고 음식을 오물거리는 작고 귀여운 입술을 보니 이제는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솟아올랐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육아는 온탕과 냉탕의 반복이다.


배가 불러 기분 좋았던 아이는 시간이 지나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폐로 연결된 드레인 부위가 통증이 심해서 약효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아이는 자지러지게 운다. 그러면 나는 간호사들을 호출해서 진통제 버튼을 눌러달라고 요청한다. 간호사가 도착할 때까지 1~3분 길면 5분이 넘어갈 때도 있는데 이때의 2호는 사나운 포식자다.


손톱을 치켜세우고 포효하며 바로 옆에 있는 엄마를 향해 돌진한다. 때리거나 할퀴며 울부짖는다. 나는 이때마다 어르고 달래고 타이르고 하다 하다 안되면 두 손을 힘껏 잡아 꽈악 끌어안는다. 그렇게 진통제 버튼이 눌려서 아이의 몸으로 타고 들어갈 때까지 죽어라 버틴다.


오물거리는 사랑스러운 입술의 아이가 온탕이라면 진통제 요구 모드는 불지옥이다. 그리고 내게 냉탕이란 아이가 걱정되어 몸과 마음이 얼어버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 이것이 바로 냉탕이다.


냉탕만 아니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다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침대가 답답한 아이가 내려오고 싶다고 울어재끼고…

간호사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내려올 수 있게 해 줬더니만 두 걸음 걷고 엄마에게 안아달라 떼를 쓰고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어 두 시간을 넘게 엄마 품에 안겨 있어 간호사를 놀라게 한다 해도…

내게는 온탕이었다. 물론 온탕과 불지옥의 끝도 없는 왕복이었지만 견딜 만했다. 아니 견딜 수 있었다.


이대로 잘 낫는다면 지옥에 가서 얼음을 찾아오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 내 마음이 오만이었을까?


그날 밤 병원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달콤한 잠에 빠져있던 우리였는데…

신은 내게 얼음이 필요하다 말씀하셨다.


아침이 밝아오던 무렵, 잘 자던 아이가 갑자기 토를 하기 시작했고 열이 순식간에 39도를 지나 40도가 넘었다.


펄펄 끓는 아이의 몸을 안고 있으니 나는 정말 불지옥에서 얼음이라도 구해와야만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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