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1호가 아기아기했던 시절 첫 이가 나와서 신기하고 귀여움에 몸부림치던 날이 있었다. 그리고 딱 6년이 지난 지금 그때 났던 첫 이가 아이의 입속에서 해방됐다.
킨디를 다니면서 같은 반에 있던 많은 친구들의 웃는 입 속에서 보였던 조그마한 숨구멍 같은 빠진 이의 공간들을 많이 봐서 익숙했을까? 처음 자신의 이가 흔들린다는 것을 느꼈을 때 아이의 표정에서는 신기함과 설렘이 가득했다.
‘아빠, 엄마, 나 이가 흔들려!!!’
우다다다 달려와서는 손가락에 힘을 주어야 간신히 느껴지는 흔들거림을 신나게 이야기했다. 이제 곧 자기도 큰 형아가 된다고, 이가 하나 정도는 빠져줘야 진짜 큰 형아가 되는 거라며 말이다.
작고 귀여운 이가 빠지고 나면 다시 튼튼한 이가 나온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기한 지를 남편과 나에게 귀가 닳도록 이야기했다.
아이가 처음 이야기 한 뒤로 두 달이 다되어 가도록 이는 빠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도 궁금한 마음에 슬슬 앞뒤로 흔들어 보곤 했는데 변화가 희미하니 바쁜 일상 중에 흔들리는 아이의 이는 잊혀지는 날이 많았다. 한 달하고도 절반이 지나간 때였을까? 이제 제법 느낌이 왔다. 그날이 다가오는 듯한 느낌. 앞니의 해방일 말이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느낌을 보고 있는데 이건 영 별다른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내 이도 아니고 아이의 입속에 있는 이인데 남편과 내가 법석이었다. 마치 내 입안에 있는 녀석이 흔들거리며 자신을 해방시켜 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초조하기도 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지난주 금요일, 드디어 내가 원했던 느낌의 기울기가 손끝에서 느껴졌다.
‘오늘이야! 오늘이 바로 그날이야. 아기 치아의 해방일’
내 말을 듣고 난 아이의 표정은 ‘진짜? 에이 아니지? 아니잖아’라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번쩍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는 긴장반 설렘반으로 떨리는 내 눈빛을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막상 닥쳐서 해야 하면 너무 떨려서 피하고 싶어 지기 마련이다. 1호도 그랬다. 오늘은 아니라며, 내일 하자며 엉덩이를 뒤로 슬금슬금 빼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오늘은 죽어도 아니라고. 그날 일리가 없다고.
하지만 아기 치아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려 했다. 왜냐하면 아기 치아의 마음은 곧 내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왠지 1호에게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수긍할 것 같다는 느낌이 뽝 왔다. 나는 타이머를 1시간으로 맞춰놓고 아이에게 설명했다. 알람 시계가 울리면 치아가 기울어질 수 있는 만큼 기울면서 살살 마사지해보자고. 그러다 보면 아프지도 않게 쏙 빠질지도 모른다고. 아이는 조금 걱정되는 표정이었지만 내 말에 수긍했다. 알람 시계는 맞춰졌고 우리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한 한 시간이 지났다. 어김없이 알람은 울렸고, 나는 약속대로 흔들리는 아이의 치아를 검지 손끝으로 살살 돌리며 마사지를 시작했다. 순간 손끝에서 뭔가 토독 하는 느낌이 나더니 치아와 잇몸 사이에서 피가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진짜 느낌이 왔다.
나는 남편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의 레이저를 쏘고 나서 실을 가져왔다. 아이가 긴장하지 않도록 최대한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는 야무지게 실을 끊었다. 슬금슬금 도망가던 아이도 심상치 않은 공기의 흐름을 눈치챈 걸까? 우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꼭 해야 해?’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이의 입을 살짝 벌려 실을 최대한 안쪽으로 밀어 넣고 미끈미끈한 아기 치아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단단하게 묶었다.
차마 무섭다는 말은 못 하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입을 벌리고 있던 1호를 식탁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남편에게 보냈다. 자기는 절대 못하겠다는 남편도 촉촉한 눈물을 머금고 있는 눈에서 해내겠다는 아이의 의지를 읽고 나서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간다. 준비해.’라는 말과 함께 남편은 망설임 없이 단번에 실을 위로 잡아당겼다. 다행히 실을 묶은 나에게도, 잡아 올린 남편에게도 실수는 없었다. 흔들리던 아기 치아는 퐁 하는 느낌으로 실과 함께 공중으로 딸려 올라왔다.
피는 아주 조금만 났고 그마저도 금방 멈췄다.
아이는 해냈다는 도취감에 환한 표정은 물론이고 이제 진정한 형아가 되었다는 듯이 어깨를 의기양양하게 펴 보였다. 뭐든 처음인 초보 부모는 생각보다 긴장을 많이 했는지 다리가 아주 약간 풀렸다. 휴우… 한 고비를 무사히 넘겼음에 감사했다.
그날 밤 나는 휴대폰 사진첩을 뒤적거려서 태어난 지 6개월이 되었을 때 빼꼼히 아기 치아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던 사진을 찾아보았다. 사진을 보니 버둥거리는 조그마한 아이의 입속에서 하얀 치아 새싹을 발견했을 때의 두근거림이 떠올랐다.
모든 것이 처음이다. 아이의 잇몸에서 첫 이가 나오고 있던 것도, 그 이가 몸 밖으로 빠져나와 자유를 찾아 떠나간 것도. 그저 이가 하나 빠지고 다시 나오고 있는 것뿐인데 나는 왠지 아이가 새로 태어난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어릴 적부터 들어서 알고 있던 노래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나는 이 노래에 자꾸 두꺼비가 튀어나왔다. 어릴 적 모래나 흙을 손등으로 덮으며 동그란 둔턱을 만들며 불렀던 노래.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새 이를 달라는 것도, 새 집을 달라는 것도 먼저 해야 할 것은 내 것을 내어놓는 일이었다. 새로운 것을 맞이하려면 지금 내 손안에 있는 것을 내려놓고 나서야 할 수 있는 일었던 것이다.
살다 보니 종종 잊고 살 때가 많았다. 내 것을 내어놓아야만 한다는 것. 내려놓지 않고 자꾸만 다시 집으려 하니 제대로 집어 지지도 않고 심지어 있는 것 마저 놓칠 때도 있었다.
새 이를 맞이하기 위해 기꺼이 잘 사용하고 있던 내 이를 내어놓아야 함을 나는 빠진 아이의 치아를 쳐다보며 새삼스레 피부로 느꼈다. 아이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것을 내어놓은 것처럼 나는 새로운 나를 위해 무엇을 내어놓을 것 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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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