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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Anne Apr 25. 2024

‘간병’ 우리 앞에 놓여있는 멀지 않은 미래 이야기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문미순

아직 나에게 먼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간병’은 너무 코앞에 와있는 현실이었다. 잠깐 인생의 책장 저기 어디쯤엔가 넣어놓고 나중에 열어볼 날이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 일은 우리 엄마를 먼저 덮쳤고 나조차도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정정하시던 외할머니가 무릎관절 수술을 하시고 나서부터였을까? 종종 엉뚱한 말씀을 하신다고 했다. 음식 솜씨 하나는 기가 막혀서 한때는 아주 큰 식당을 운영하시던 우리 할머니였는데 큰 이모와 함께 살기 시작했고, 큰 이모의 집안일을 도와주시기 위해 청소며 요리를 도맡아 하시다가 어느 날부터 모든 것을 멈추셨다.


‘엄마가 만든 음식 너무 짜서 못 먹겠다.’

‘엄마가 세탁기에 휴지가 통째로 들어가서 옷을 다 배려 버렸다.’

‘엄마가 가스 불을 켜놓고 냄비를 통으로 태워먹은 게 벌써 다섯 번째다.’


그 이후로 할머니는 큰 이모네 작은 방에서 티브이를 켜놓으신 채로 힘없이 앉아 계셨다. 그렇게 몇 해를 보내시던 어느 날 큰 이모가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다. 둘째 딸인 엄마는 이모와 이별을 한 이후부터 쭉 할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엄마와 통화할 때면 늘 할머니의 안부를 묻곤 하는데 그때마다 사건사고는 늘 끊이질 않았다.

교회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시다 대변 실수를 하셔서 예배를 드리다 말고 화장실 문을 잠가 놓고 할머니를 씻기고 속옷을 빨아야 했던 날. 차를 타고 이동하시다 속이 불편하셔서 차 안에 시원하게 쏟아 내신 일. 가슴이 답답하시다며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밤새 우셔서 엄마도 함께 뜬눈으로 하얗게 지새웠던 일.


다행히도 지금은 늘 성인용 기저귀를 하고 계셔서 엄마가 용변에 대한 걱정은 조금 덜 수 있었다. 그래도 미용실 원장님인 엄마가 할머니를 모시고 미용실에 와도, 컨디션이 안 좋으셔서 집에 머무르고 계셔도 우리 엄마는 늘 걱정을 안고 산다.


나는 그렇게 간병인의 삶을 매일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나와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로 읽히지 않았다. 아… 우리들의 이야기구나 싶었다. 전혀 다른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내가 될 수 있는, 나의 현실에 와 박혀있는 그런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중심인물인 명주는 70대 노모를 간병하고 있던 50대 딸이었다. 한때는 결혼도 하고 예쁜 딸도 낳고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던 그녀였지만 그녀를 괴롭히던 결혼 생활을 벗어던짐과 동시에 그녀의 삶도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낭떠러지 끝에 매달린 것만 같던 순간에 그녀는 아픈 엄마에게서 함께 살자는 제안을 받았다. 간병인의 인생은 그날부터 명주를 옭아매기 시작했고, 드디어 간병인의 무게를 벗어던질 수 있던 날 죽은 엄마의 핸드폰에 찍힌 연금 입금 문자를 확인하게 된다.


명주의 옆집에는 있는 20대 건장하고 예의 바르며 효자인 준성이라는 청년이 아픈 아버지를 모시며 살고 있다. 아버지의 회복을 위해 매일같이 산책이며 재활 운동에 열심힌 준성은 밤에 대리 운전을 하면서 아버지를 책임지고 있는 보기 드문 효자다.


이야기는 이 두 사람을 중점으로 흘러가고, 나는 읽는 중간중간 명주의 딸내미를 보며 욕을 했고, 준성의 아버지를 보며 돌아가신 우리 아빠가 생각나 열이 받기도, 마음이 울렁거리기도 했다.


두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가슴이 답답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이미 존재해 있었고, 내 주변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건이었다. 간병인의 삶은 우리 엄마의 인생에서 빼놓으래야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니까.


그래서 이야기가 진행되어 갈수록 나는 명주와 준성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제발 그들이 행복했으면, 안정적으로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었으면 싶었다.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독자로서 빌었다. 왠지 소설 속에서 그들이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 엄마도, 아니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간병인의 삶이… 과연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까?

그렇게 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 책장을 덮고 난 지금은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묻는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간병인들이 살아남으려면 과연 우리는 사회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까?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의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

소설을 읽는 내내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 것 같았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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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밀리의 서재,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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