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켰다. 버스에서 오는 내내 부르다 보니 입에 붙었나 보다. 사무실에서 허밍으로 흥얼거림을 알아챈 것이다. 쑥스러움에 침을 꼴깍 삼켰다. 일하는 사이사이에 아침에 들은 송독이 귓가에 스친다. 살랑바람 같다.
정일당의 시를 공부할 때 교수님이 읽어주셨던 송독이 씨앗을 뿌렸기 때문이다. 그 날 이후로 설레였다. 심쿵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정일당 묘소에 가서도 함께 읊었던 장면이 영화처럼 남았다.
송독(誦讀)은 소리내어 읽는다는 뜻이다. 풍악에 맞춰 노래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천자문을 노래처럼 읊는 것을 본적은 있지만 시조 등에 가락을 넣어 읽는 것을 처음해 봤으니 생경했다.
답사를 다녀오는 길. 교수님이 무심히 읊어주신 시조도 마음에 남았다. 암송해서 들려주시니 재빨리 녹음기 버튼을 눌렀다. 주자(朱子)의 권학시(勸學詩)였다. 눈으로 읽어본 구절인데 소리내서 읽으니 색다른 맛이 있다. 한자어의 뜻을 생각하며 읽어서인지 잡념도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권학시는 칠언절구다. 내용이 어렵지 않고 친숙한 한자라 입에 착 감겼다.
소년이로 학난성 (少年易老 學難成)이니
일촌광음 불가경 (一寸光陰 不可輕)이라.
미각지당 춘초몽 (未覺池塘 春草夢)인데
계전오엽 이추성 (階前梧葉 已秋聲)이라.
: 나이 먹기는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려우니, 짧은 시간도 가볍게 여기지 말지어다.
연못의 봄풀은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는데, 섬돌에 떨어지는 오동 잎사귀는 가을을 알린다.
- 주자(朱子)의 권학시(勸學詩)-
시간이 빨라 늙기는 쉽고 학문을 한다 해도 깨우치기는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아껴서 공부하라는 뜻이다. 봄이 왔구나 하는 사이에 금방 가을이 와 버리지 않냐는 어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을 바라보니 더없이 공감 된다.
어릴땐 잔소리 정도의 진부한 글귀라 여겼는데 이제는 옛 성현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옛 것이 좋아진다. 나이듦인가. 감나무 익듯 익어가기 때문이겠지. 생각이 많아지고 씻기지 않은 말들의 행간을 읽게 되는 일이 잦다. 주위환기가 필요한 시점에 송독은 선물이다.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구나 싶어 의아했지만 새로운 취미로 받아들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