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뭐 볼 거 있나? 차라리 여수나 부산을 가보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통영을 고집했습니다. 박경리 소설에서 소개된 통영에 대한 로망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 빛은 맑고 푸르다.
남해안 일대에 있던 남해도와 쌍벽인 큰섬 거제도가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현해탄의 거센 파도가 우회하므로 항만은 잔잔하고 사철은 온난하여 매우 살기 좋은 것이다. 통영 주변에는 섬들이 위성처럼 산재하고 있다.
<김약국의 딸들> 첫 1장 통영
전날 내린 비로 말갛게 단장된 나무가 청량감을 더합니다. 기념관은 미륵산 자락 아래 푸른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곳. 2층 구조로 되어있고, 1층에는 '북 카페, 토지'가 있습니다.
1층 '북카페, 토지'는 커피와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공간으로 만 60세이상의 바리스타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카페예요
2층 기념관으로 들어가는 곳은 나무와 풀들이 있었는데, 특히 눈에 띈 것은 '개머위'지요 . 빛깔고운 둥그런 머위잎들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한 정원. 동상과 작은 연못도 정겨웠습니다.
박경리의 일대기 (1926~2008) 와 주요 작품들의 연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작가로서의 삶을 위해 분투했던 모습과 치열하게 사유하며 문학작품을 대한 고뇌를 엿볼 수 있었지요.
서울 정릉동 토지길, 하동 평사리. 강원도 원주 등 박경리를 기념하는 곳은 많아요. 하지만 통영은 그녀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곳입니다.
그녀의 본명은 '박금이'. 박경리는 소설가 김동리가 지어준 필명 이라고 해요. 6.25때 남편과 사별하고. 딸을 데리고 통영으로 내려와 재혼을 했지만, 딸이 다니던 학교의 총각 선생님과 재혼했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아들마저 사고로 잃고 난 후 통영을 찾지 않으셨다고 해요.
서울과 원주에 살면서 항상 그리워하던 고향 통영. 그녀에겐 마주대하기 힘겹던 상처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고향에 묻히기를 희망하시며 50년만에 통영을 찾았다고 해요. 생전에 통영을 돌아보며 눈물을 흘리시고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니 마음이 뭉클했어요, 수구초심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쓰는 삶을 살아가려는 후배들에게 남긴 말들이 소리없는 울림으로 와 닿았습니다. 그 울림은 그녀가 잠들어있는 묘소로 발걸음을 향하게 했지요.
묘소에 가보자는 제안에 함께간 지인들 모두 힘듦을 표시합니다. 에너지방전상태.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아쉬움이 남네요. 홀로 다녀온다고 협조를 구해 봅니다. 그녀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으니까요 .
출발시간이 임박하니 여의치 않았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나무 계단을 올라 유채꽃이 드리워진 길을 걷고 걸었습니다.
통영, 박경리 작가 묘소
가쁜 숨을 내쉬고 산 중턱에 이르러 맞닥뜨린 묘소. 통영의 박경리 기념관이 특별한 이유이기도 합니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생전의 말처럼 간소한 무덤만이 고향의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방향으로 위치해 있었습니다. 잘 관리된 봉분 앞에 약간은 시든 꽃이 꽂혀 있었지요 그 무덤 앞에 참배를 하고 마음다해 그녀와 대화를 했습니다.
존엄성은 바로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가장 숭고한 것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걸 내 마음에 품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박경리 문학이야기(박경리 기념관)
그녀는 얘기합니다. 생각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배제한다고.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자기 자신과 마주 앉아보라고, 모든 창작은 생각에서 탄생하는 것이라고
나 자신과 마주 앉는 시간들을
조금 더 가져보자고 다짐해 봅니다.
내 마음으로
내 눈으로
세상을 정직하게 보아가자고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