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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김세미 Jul 23. 2023

색시, 문 좀 열어줘

할머니의  당아욱사랑


관리실 문이 열리는 듯하더니 이내 닫힙니다. 통화 중이던 그녀는 민원사항을 메모하느라 다시 고개를 민원대장에 떨굽니다. 통화 중 메모를 안 하면 금방 잊게 되니까요. 다시 문이 열리고 미어캣처럼 고개만 쑥 내밀다 사라지는 얼굴. 뭐지? 하는 찰나에 걸려오는 전화.      

    

또다시 문이 열리고 고개가 빼꼼. 통화 중이던 그녀. 이번엔 몸을 일으켜 들어오시라 말씀드립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한 걸음에 문 앞으로 움직여봅니다.    

 

“색시~!. 문 좀 열어줄까? 내가 집에 가야 는데 문이 닫혔어. 옷이 이래 가지고 들어가기가 좀 그래서 “     

할머니의 옷은 집에서 입는 원피스 차림. 갑갑함을 싫어하는 어르신이라 위에 속옷을 제대로 챙겨 입지 않으셨습니다. 사무실 문을 빼꼼히 여닫으신 이유가 있었던 거예요.   

  

” 저 혼자 있으니까 일단 들어오세요. 몇 동 사세요?     

당황해하시는 할머니께 의자에 앉으시라고 권해봅니다.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이어집니다.    

 

“응.. 그게 몇 동인지 갑자기 기억이 안 나는 거야, 우리 영감이 아파서 수술하러 왔거든...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쉬라고 하는데 우두커니 안에만 있을라니까. 영 답답해서 쓰레기 버리러 나왔다가. 예쁜 꽃구경에 길을 잃었지 "     


꽃을 보느라 길을 잃으셨다니. 꽃을 좋아하는 그녀는 할머니와의 공감대가 형성됩니다. 예쁘게 핀 당아욱에 마음을 뺏기셨다는데 이해해 드려야지요     

“ 우리 아들이 찬찬해서 종이에다가 비밀번호랑 다 적어줬는데 내가 깜빡하고 윗도리를 안 입고 나와서 색시까지 귀찮게 해 버렸네 "     

“아드님께 금방 연락드려 볼게요 ”     


입주자 명부를 찾아봅니다. 흔한 이름은 아닌데 동명이인. 나이를 물어보고 근접한 분에게 전화를 드려보는데 통화가 안 됩니다. 배우자분도 받지 않으시니 문자를 보냈지요    


오늘은 손 없는 날이라 전출 세대가 많은 날. 무료하실 듯하여 사탕을 챙겨드리고 편히 계시라 말씀드려도 어딘가 불편한 기색..     

“할머니. 아드님이 좀 바쁘신가 봐요. 조금 기다리셔야 할거 같은데.. 이 겉옷 걸치고 계실래요?"     

얇은 카디건을 내어 드리니 좋아하십니다. 왜소한 체형이라 딱 맞았어요. 다행이다 싶었지요. 관리실에 들어오는 분이 계셨거든요. (자꾸 시선을 떨구시는 할머니 모습을 포착한 센스 있는 그녀입니다    

      

얼마간의 분주한 시간들이 지나니 아드님께 전화가 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시더군요. 사무실로 들어오는 기전반장이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기로 했지요.     

" 색시 고마워.. 색시가 찬찬하니 잘해줘서 내가 편히 있다 가네."     

아드님을 떠올릴 때 쓰신 찬찬함이란 수식어를 붙여주신 건 최고의 칭찬이란 걸 알기에 그녀의 입꼬리도 올라갑니다.     


이사 가는 세대의 중간관리비를 뽑아 팩스로 보내고, 입금 여부를 확인하고 관리비 납부 확인서까지 보내드렸지요. 썰물 빠지듯 훅 빠져나간 상황들을 정리하고 커피 한 모금을 합니다. 조금 있으면 전입 신고를 하러 오 실 테니 잠깐의 커피타임을 갖으려는 겁니다. 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할머니가 다시 고개를 내미십니다.     


오잉? 왜 다시 오셨지? 설마..'그냥 들어오셔도 되는데...'     

 멋쩍어하시더니 이내 말문을 여시더군요.     


”아무래도 색시가 문 좀 열어줘야겠어. 문이 안 열려 1234 이렇게 누르면 된다고 했는데 열리지가 않네”

“ 그래요? 비밀번호가 잘못된 거 아닐까요?     

아드님께 전화로 다시 확인해 보니 비밀번호는 이상 없습니다. 그렇다면 할머니가 잘못 누르셨다는 결론이 내려지지요.     

" 잠깐 기다리셔야 할거 같은데요. 주차장 트렌치 공사 있어서 다들 현장 가시고 사무실에 사람이 없어요.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     

또다시 할머니의 기다림이 시작됩니다. 관리실을 비울 수가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오늘은 손 없는 날이기도 하니까요. 전입신고를 하러 오신 분들께 입주 카드, 주차 사용 신고서 등의 서류 작성을 안내드리느라 그녀는 분주합니다. 의자 한편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가 자꾸 신경이 쓰입니다.


때마침 들어온 반장님. 할머니께 알은체를 합니다.     

“ 왜 여기 계세요? 혹시 못 들어가신 거예요? 아까 번호 알고 계시다 해서 그냥 7층에 내려드렸는데... 들어가시는 걸 못 본 제 잘못입니다. 어머님 가시죠”     

넉살 좋은 반장님의 호위를 받으며 할머니가 퇴장하시는 순간, 바쁜 와중에 인사도 드립니다. 혼자 앉아계시는 게 맘에 걸렸는데 다행이다 싶었지요.     


그렇게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반장님께 전화가 옵니다.     

“ 김주임 이거 안되는데 ,, 아까 적어준 번호가 맞지?.... 가만 보자. 건전지 교체 시기인가?     

다시 빼꼼히 열리는 문. 미어캣을 연상시키는 할머니의 얼굴이 보입니다. 기전 반장과 같이 재입장.

" 관리실에 9V 건전지가 있었나? 가만 보자... 문 열고나면 건전지 바로 교체해 드려야 할 텐데 세대에 건전지가 있는지 여쭤봐야겠군"     

친절한 반장님이 아드님께 건전지 여부를 확인해 봅니다.  

   

"집에 건전지가 없다니까. 관리실 건전지로 갈아 드려야겠구먼... 건전지 남은 게 있던가.?

" 오전에 드린 게 마지막이었는데요'

"그럼 어쩐다. 일단 여기서 잠깐만 계세요. 제가 금방 뛰어갔다 올게요 "     

친절한 반장님 발 빠르게 움직여 주십니다.

"아이고 관리소 양반이 욕 좀 봐주소 내가 우리 아들한테 얘기할라니까 "

"네 할머니 제가 얼른 가서 사다가 교체해 드릴게요".     

할머니는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집으로 들어가실 수 있었습니다.     




오전 시간이 지나고 오후가 될 무렵. 관리실 문이 또 빼꼼 열립니다.     

"색시~바빠? 이거 좀 받아"

미어캣 할머니였지요. 이번엔 손에 무언가를 들고 계십니다.     

"옥수수 좋아하나? 줄 건 없고 이거라도 꾸준할 때 먹으라고 챙겨 왔어"

"저 옥수수 킬러예요. 엄청 좋아하는데.. 잘 먹겠습니다.     

넙죽 받아서 한입 베어 물고는 엄청 맛있다고 엄지 척을 해 보이는 반장님 덕에 할머니도 함박웃음을 지으십니다. 한 개씩 손에 들고 먹으려는데 관리실 문이 또 빼꼼 열립니다.    

 

"색시, 나 문 좀 열어줘~옥수수 들고 오느라 또 핸드폰을 놓고 왔네. 현관문 키를 핸드폰에 매달아 놨는데 어쩌겠어"

"네 이번엔 제가 열어드릴게요".     


어머니의 사랑. 은혜라는 꽃말을 가진 당아욱     

" 내가 아까 저 꽃 때문에 길 잃은 거야. 저 꽃을 우리 엄니가 좋아하던 꽃이라 어릴 때부터 많이 봤거든. 저 꽃만 보면 엄니 생각이 난다니까"

" 저 꽃 저도 좋아해요.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꽃말이 있는 꽃이거든요"

"내가 엄니 생각하는 거랑 똑같네. 곱다 고와"    

 

공동 현관문을 열어드리고 승강기 버튼을 눌러드리고 오는 길. 할머니 마음을 홀린 당아욱이 오늘따라 더 고와 보입니다.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옥수수를 한입 베어 물고 알알이 떼어냅니다. 옥수수 알맹이처럼 다양한 사연들이 모여있는 아파트. 그녀는 이곳에서 오늘도 소소한 행복을 마주합니다.     

당아욱을 좋아하는 할머니와 옥수수 알맹이 같은 행복을 마주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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