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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김세미 Jul 26. 2023

마음 씻김이 필요한 날

그녀의 안부도 묻습니다


오늘은 쉽게 잊히지 않는 입주민들의 날선 말들로 인해 스크래치가 생긴 날.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근무내내 마음을 오므리고 있었습니다.


마음 씻김이 필요한 날입니다. 비가 오니 다행이라 생각했지요. (빗물에 마음을 씻어낼 요량이니)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그녀의 무거운 마음을 누가 얘기해 주었는지. 같이 근무하던 K의 데이트 요청을 받았습니다. 설렘 가득한 퇴근길을 맞게 됐지요.



존재만으로 선물이 된 K. 오랜만의 만남이라 서로의 안부를 묻는 수다가 한창입니다. 차량 유입이 많은 구간. 조금 밀렸지요. 라디오에서 흐르는 잔잔한 노래가 정체구간의 답답함을 해소해 줍니다.


어쩌면 우리는 외로운 사람들
만나면 행복하여도
 헤어지면 다시
혼자 남은 시간이
못 견디게 가슴 저리네 ~


“이 노래 너무 좋지 않니? 외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지난주에 이 노래듣는데 눈물이 흐르더라”


참았던 슬픔을 토해내는 먹구름같이 K 안에 슬픔도 삐죽 나온 것일까? 덤덤히 얘기하는 K의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또로록 눈물이 맺힙니다.


물 담긴 풍선에 틈이 생겨 점점이 흐르는 물 같았죠. 항상 에너지 넘치는 쾌활함의 대명사 K의 색다른 모습. 휴지를 내어 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내 안에 숨죽여있던 감정을 고개 들게 하는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그 감정이 주인공이 되도록 잠시 멈춰줘야 합니다. 억눌렸던 감정이 조연이 아닌 주연이 되는 날임을 인정해야 하지요. 노래 한 곡에 내 마음속 눌려졌던 감정도 고개를 듭니다. 또로록..

"가사가 콕 박히지? "  이번엔 저의 눈물을 알아본 K가 얘기합니다.

"저도 갱년기 터널에 진입했나 봅니다"

갑자기 흐르는 눈물에 너스레를 떨어보는 그녀를 보고 빙그레 웃는 K.


노래가 끝나자 외로움이 생명과도 직결된다는 라디오 사연이 차 안의 공기를 채웠지요. 외국의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도 고독부를 설치해야 한다는 대화가 흐르더군요.



“104동 1층 할머니는 지금도 나오시나?

“그럼요. 오늘도 쑥개떡 건네시고 꽃밭에 가셨지요. ”


관리실 앞, 화단에는 경비 아저씨의 정성 담긴 화분이 많습니다. 자식처럼 키운 꽃들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계절마다 꽃을 바꿔주시지요.


튤립. 수선화를 시작으로 란타냐, 봉숭아, 천일홍, 백일홍. 당아욱, 독말풀, 맨드라미, 코스모스, 국화 등등 다채로운 꽃들을 보여주시니 어르신들의 발걸음을 붙잡게 되지요.


꽃밭에 들르실 때마다 간식을 관리실로 가져오시는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파트 화단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나는 어르신입니다. 꽃을 대하는 마음이 남다른 분. 꽃을 보면 어린 시절이 생각나고 그 꽃과 함께한 추억들이 떠오른다고 얘기하십니다. 할머니에게 꽃은 특별한 존재인 거죠..


자연이 말을 건네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을 좋아하는 그녀는 꽃과 나무가 주는 위로에 힘을 얻기에 할머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독부가 생기다면 조경 편익을 제공하는 정책을 시행해 달라고 건의하고 싶어집니다. 오늘처럼  마음 씻김이 필요한 날 언제라도 위로받고 싶은 꽃과 나무가 더 많아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이야기가 적힐 노트를 꺼내봅니다. 마음 씻김이 필요했던 날이니. 이 또한 기록으로 남기지요.

한뼘 더 성장할 그녀의 안부를 물으며 응원의 댓글을 남기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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