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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김세미 Jul 28. 2023

파리의 놀이터.

세대 앞 적치물 NO


현관 앞, 파리가 많아요. 왜 그런 거죠? 
무슨 일 있는거 같아요

미화 여사님께 민원 상황을 말씀드렸지요. 해당동에 다른 세대들은 괜찮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점심쯤 지나 홈키파를 가지러 오시더니 아무래도 이상하다 말씀하시네요. .

"13층 . 파리가 바닥에 또 생겼어. 분명히 오전에 깨끗이 치웠는데. 누가 다시 갖다놓은 것처럼 "


원인을 못 찾겠다고 혹시 세대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십니다. 설마하는 마음이 들면 확인 해보는 게 맞지 않냐고 하시니 현장에 가 봅니다.


승강기를 기준으로 오른쪽 복도는 깨끗했어요. 유달리 왼쪽 복도 바닥만. 까만 점점이 무늬들이 눈에 띄는 이유. 자세히 보니 파리 사체가 길을 만들었어요. 길 따라 쭈욱 늘어선 느낌. 그 길을 쫓아보니 4호세대 앞에 적치물이 눈에 띕니다.


피난 시설 방화 구획 및 방화시설의 주위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장애물을 설치하는 행위 등은 소방법에 걸리는 일. 계단. 통로 등의 공용부분에 물품 및 비품을 적재하거나 통행을 방해하면 안됩니다. 하지만 이 세대는 상시 적치물이 아니라 재활용 관련된 적치물이었어요.


아파트의 재활용 수거 일이 일주일에 한 번이라 쓰레기를 모아놨다 버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집앞에 임시적으로 박스류를 내어 놓으시지요. 오늘도 그런 경우.


겉으로 봤을땐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어요. 복도를 한번 둘러보고 계단쪽도 보는데 유독 13층에만 파리가 많습니다. 이쯤되면 아까 상자들을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큰 상자를 살짝 들춰보니 컵라면, 피자박스, 치킨. 배달음식 봉투까지 그대로 놓여 있었지요.


음식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살점 붙은 치킨 뼈와 시큼함이 베인 치킨무가 정체를 드러냅니다 . 미쳐 봉해지지 않은 다른 음식물도 눈에 띄니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죠.


분리수거를 안 하고 마구잡이로 종이 박스 안에 놓여 있는 쓰레기들이 파리떼 출몰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하는 순간 . 그래도 뭔일이 있지 않겠냐고 불안해하시는 미화여사님을 대신해 초인종을 눌러봅니다. 대답이 없습니다.


이번엔 민원을 제기했던 3호 세대 초인종을 눌러보았지요. 아침에 청소를 했는데도 또 파리가 생겼다고 말씀드리려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이미 알고 계시더군요.외출하려고 현관문을 여는순간 파리 예닐곱 마리가 집안으로 훅 들어오니. 홈키파 반 통을 다 뿌렸다고.


파리떼가 13층 왼쪽 복도에만 분포한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 했지요. 쓰레기가 아닌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를요. 차량 진출입 내역을 보니 차 한 대는 일주일째 안 움직이고 다른 한 대는 이틀 전 출차 후 아직 집에 들어오진 않은 상태였어요. 전화를 해봅니다


휴가를 왔다고 하네요. 내일 도착할 거라고. 재활용 버리는 날이니 적치물은 낼 저녁에 와서 치우면 되지 않겠느냐 되려 큰소리를 치십니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하셨던 미화 여사님. 다른 변수가 생긴 최악의 상황이 아닌 것을 다행히 생각하시네요 예전에 그런 일이 있어 힘들어했던 동료 얘기를 접했었다고요.

© claybanks, 출처 Unsplash


" 그래서 파리들 놀이터가 됐었나 봐. 별일도 아닌데 놀이터 청소는 끝내야지"


박스 안에 있는 음식물은 치워 놓겠다 말씀하십니다. 치킨무의 시큼한 냄새가 파리를 부른 듯 하다고. 내일까지 놔두면 또 얼마나 많은 파리들이 모여들겠냐 하십니다.


퇴근길 사인을 하러 오시더니. 마음 후련히 치워 버렸다고 말씀하시네요. 나쁜 일 생긴 거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냐고요.


땀으로 젖은 작업복을 시원한 꽃무늬 블라우스로 갈아입으신 우리 여사님. 봉숭아물을 곱게 들이신 두 손에 박카스를 쥐어드렸지요. 마음이 넉넉한 분들과 함께 일하고 있음에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집 앞에 파리 놀이터~ 더 이상 만들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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