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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김세미 Jul 30. 2023

토끼에게 고함

아파트  토순이

'분명 무언가가 지나갔는데 뭐였지?'


고양이가 지나간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손가락 브이를 연상시키는 까만 귀를 본 듯한 느낌. 사뭇 다른 자태에 용기를 내어 관목밑을 살핍니다.


그 순간 웅크리고 있던 몸을 움직이는 녀석의 몸놀림. 무방비 상태로 지켜보던 그녀는 들고 있던 음료수를 떨어뜨립니다. 어찌나 놀랐던지요. 토끼입니다. 토끼의 까만 눈을 본 그녀의 눈은 토끼 눈이 되었죠


눈이 마주치자 쏜살같이 내달음질 쳤던 녀석. 가끔 생각났지만 이후론 볼 수 없었어요. 보름 뒤. 전화 한 통으로 토끼의 존재가 밝혀지네요


토끼가 굴을 파고 있는데 계속 방치하실 건가요?

화단과 건물 사이에 굴을 파는 토끼를 보고 관리 미흡을 지적하는 입주민이 계셨던거예요. 현장에 가보니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단 더 이상의 굴 파기 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셨다고 했습니다


이후로 놀이터 화단이 변화됐어요. 사과 껍질과 배추 등의 야채가 놓이기 시작했죠. 녀석을 위한 먹거리입니다.


화단에서 사과를 먹던 토끼


점심시간 산책길에 토끼와 조우한 그녀. 그런데 토끼가 달라졌습니다. 눈이 마주쳐도 눈동자를 피하지 않는 겁니다. 용기 내어 1미터 안팎으로 거리를 좁혀보았어요.


이게 웬일인가요? 머뭇거림은 그녀 몫. 토끼는 눈동자를 마주쳐도 그저 먹는 것에 진심인 듯 태연합니다. 바라보는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겁니다.


이 녀석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수줍어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네요. 새끼 강아지를 만나자 따돌리기까지 합니다. 그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어요.


상당히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녀석. 전에 봤던 그 토끼가 아닌가? 토끼의 해가 되니 주인공으로서 존재감을 발산하려는 걸까?


토끼 집사를 자청하게 만드는 매력 속에 빠지게 되더군요.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토끼의 특성 중 하나인 왕성한 번식력.


캥거루의 나라 호주가 토끼로 넘쳐난 적이 있었거든요. 유럽에서 정착할 당시 데려온 암수 한 쌍이 전 국토를 토끼 왕국으로 만들었죠. 농작물 피해가 심각해지니 토끼 소탕작전을 펼쳤고. 산더미같이 쌓아 올린 토끼 시체를 불태우는 연기가 꺼질 날이 없었다는 기사가 생각났어요.


아파트에 암수 나란히 토끼가 살았다면 토끼 천국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홀로 남아 왕성한 번식력을 잃었다는건 토끼가 살아남은 이유는 아닐는지.


그래서 감히 토끼에게 고합니다.

혼자 외롭겠지만 지금처럼 솔로로 꿋꿋하게 버티어 가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아파트에 살고 있는 토끼를 소탕해 달라는 민원에 애물단지가 될지도 모른다고.


토끼의 번식력이 독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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