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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김세미 Aug 01. 2023

너를 기억해 줄 게

고라니의 비밀




수첩을 넘기던 그녀의 시선이 멈춥니다.  돌멩이 하나가 동동 거리며 파문을 일으키듯, 그녀 안에 고요하던 호수에도 물수제비가 되어 마음을 흔들었지요. 손끝이 시리던 그날 아침 공기 속으로 순간 이동.     


진눈깨비가 내린 아침이었지요. 정문을 지나 관리실로 향하려면 계단을 올라가지만  나지막한 경사로를 택합니다. 흩날린 눈발에 미끄러질세라 대빗자루로 비질을 하는 경비아저씨가 보였거든요.    

 

" 어서 와요. 이른 아침 애들 챙겨주고 출근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아이 셋 엄마라고 애국자라고 항상 엄지 척 용기 주시는 아저씨의 격려에 기분 좋은 출근길.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언몸을 녹여주는 아침입니다. 경사로를 지나 우회전 하는 순간 외곽 미화아저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손짓을 하십니다     


" 반장님! 여기 좀 와보세요"


경비아저씨를 부르는 거였어요. 이른 출근길에는 산책을 즐기는 그녀도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외침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아저씨들이 서계신 곳에 무언가 놓여 있었습니다. 갈색빛이 나는 동물.    

  

“아이고 이게 웬일이야".


얼핏 보면 사슴 같아 보이는데... 동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그녀는 아저씨를 바라봅니다

고라니를 실물로 영접하긴 처음이었지요. 귀엽게 생겼습니다. 야리야리한 자태였죠. 잠든 것처럼 보이는 깨끗한 사체. 아저씨가 살짝 움직여 보니 머리 밑쪽에만 검붉은 피가 있었습니다. 바닥에 남겨진 동그라미 형태의 핏물이 고라니의 죽음을 말해줍니다.     


“아파트에 어떻게 들어온 거야. 누가 일부러 갖다 놓은 것 같지는 않은데”

”요즘 고라니가 예민할 때거든, 김 씨는 지난주에 로드킬 당하는 녀석을 마주했다고 얘기하던데 “     


보지 않아도 될 장면을 마주했습니다.  박제된 듯 누워있는 고라니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겨울이라 사체는 깨끗했지요. 유리문에 부딪혀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니. 대표적인 로드킬 희생양인 고라니가 왜 아파트 안으로 들어왔을꺄?  앞발 뒷발을 가지런하게 붙이고 누워있는 1미터 남짓한 길이의 암컷이. 혹여 임신을 한 것은 아닌지 이맘때 임신을 한다고 . 두런두런 오가는 이야기를 뒤로하며 사무실로 향합니다.      


일단 고순이라 애칭을 정했지요. 고순이에게 죽음을 밝혀주겠다 약속해 봅니다. cctv 검색대에 어느 때보다 비장한 마음으로 자리합니다. "나의 죽음을 밝혀줘! 이렇게 죽고 싶진 않았어!"고순이의 이야기가 스칩니다. 진실을 꼭 밝혀보리라 다짐했지요. 

 

얼마 전 공동주택 보조금을 신청해 광케이블을 깔고 설치된 600만 화소 cctv가 위력을 발휘해 줄 겁니다.     

아파트 뒷산 쪽에서 내려오기엔 등산로를 지나야 합니다. 고라니가 굳이 그 길을 택했다면 내달리진 않았을 텐데. 질주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있었으리라.(셜록홈스의 날카로운 시선을 차용합니다)    


정문 쪽 경사로를 비추는 화면을 주시합니다. 차단기를 지나 경사로를 내달렸다면 속도감이 붙으니까요. 차량의 출입이 뜸해지는 3시경쯤 무언가 휘리릭 지나갑니다. 화면 배속을 낮춰서 찬찬히 살폈지요. 날씬한 자태를 뽐내는 기품 있는 고라니입니다. 눈동자가 정확하게 찍혔네요. 경사로를 거침없이 내달리더니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다른 각도로 확인하니 놀이터 쪽으로 이동한 후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때 또 하나의 움직임 포착. 개 한 마리가 고순이가 갔던 방향을 쫓더군요. 놀이터 쪽 화면을 다시 검색해 봅니다. 고순이의 사체가 놓여있던 건물 앞에 서성이는 개의 움직임은 경사로를 향합니다. 아파트 진입할 때 맹렬히 달려오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퇴장입니다.     


퍼즐이 하나씩 맞춰집니다. 새벽 시간 들개에 쫓겨 아파트로 진입한 고라니. 충분한 거리를 확보했지만 굳게 닫힌 유리문이 변수가 되었던 거지요.      


고라니의 죽음을 확인한 개의 마음이 궁금해집니다. 들개가 고라니를 먹이로 취하려 했다면 저렇게 깨끗한 사체로 발견되지 않았을 테니까요. 단독생활을 하는 고라니는 수줍음이 많았을 텐데, 남성다움이 물씬 풍기는 들개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던 건 아닐까?    

 

그냥 친구 하자고 쫓아왔을 뿐인데... 고라니의 마음을 훔치고 싶어 잠깐 얘기 좀 하자고 내달렸던 건데 ᆢ본인의 행동으로 세상을 달리 한 고라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진 않았을까?     


들개의 구애로 인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철저히 화자 중심의 결론으로 사건을 종결합니다. 입주민들이 혹여나 보게 될까 사건현장을 깨끗이 치우시는 아저씨들께 모닝커피 한잔을 내어드렸지요.     


고순아! 너를 기억해 줄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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