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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김세미 Oct 08. 2023

여유당에서 맛본 여유

다산부부  회혼례

어디갈까?  운전면허를 딴지 얼마 안 되는 친구가 데이트 신청을 합니다. 뚜벅이 신세를 면하니 여유가 생긴다 하더군요.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운전수를 자처하는 모양새에 비교적 가까운 드라이브 코스를 고르다 낙점한 장소는 여유당입니다. 가보고 싶었던 곳이니 설렘 반 기대반으로 출발했지요.



주차장에 도착하니 관광버스 몇 대가 와 있네요. 역사체험단이라고 쓰여있던 차량. 혹시 행사가 열리는 날인가? 주위를 둘러보니 플랜카드가 보였어요. 다산 부부 회혼례 재현행사. 날짜가 오늘입니다. 행사일이 지났으면 아쉬웠을 터인데 운수 좋은 날입니다. 벼르고 온 행선지는 아니었으나 역사 체험단의 일원이 되기로 합니다


여유당은 정약용 선생의 생가. 관직 생활을 할 때는 서울에서 지내다 정조 승하 후 마재마을 고향 집 사랑채에 여유당(與猶堂)이란 편액을 걸었데요.


.정약용은 18년의 유배생활 중, 11년을 강진에서 보내셨습니다. 극한의 유배 생활 동안 목민심서 16권을 저술하셨고. 아내가 보내 준 치마폭으로 하피첩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지요. 강직했던 성격으로 흐트러짐 없이 생활하셨던 분입니다.


몇 해 전 유배지인 강진에 갔을 때 놀랐던 건 담장을 두른 대나무였어요. 문밖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감옥 같은 그 유배 생활의 경계를 담당한 표식. 하지만 누가 뭐라 규정지었든 간에 많은 저서를 남기셨습니다. 정신 승리의 한 단면을 보여주신 분.



.

긴 유배 생활 끝에 고향 집에 오셨으니 얼마나 기쁘셨을까?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다 보니, 강진의 툇마루가 생각나더군요. 선생님도 이곳에 앉아 강진에서의 기억을 더듬지 않으셨을까?


여유당의 이곳저곳을 소요하다 보니 오동나무 옆 글귀에 걸음을 멈춥니다. 여유당이라고 지칭하게 된 유래가 소개되어 있었지요. 본인의 약점을 바라보고 선인의 말씀을 새기셨습니다. 겨울 냇물 건너듯 신중하고.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는 뜻을 담은 여유당(與猶堂). 그 의미를 알고 나니 한가롭다의 여유(餘裕)가 아님은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지요.



여유당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얕은 언덕 너머로 묘소가 눈에 띕니다. 선생은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일 아침에 눈을 감으셨지요. 집 뒷산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받들어 자리 잡은 묘소에 올라가 봅니다. 봉분이 크다 싶었는데 선생과 부인의 합장묘였어요. 소나무로 에워싸인 묘소에서 아래를 보면 생가 안마당이 훤히 내려다보입니다.



다산 부부 회혼례 재현행사



남양주에서는 다산 부부의 회혼례 재현행사를 매년 해오고 있었어요. 오늘은 운 좋게도 올해 마지막으로 열리는 날. 행사를 준비하는 손길이 더해지니 분주한 관계자들의 움직임 사이로 마음이 들뜹니다.



식전에 신랑 신부가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한다는 의미로 손을 씻더군요. 신랑이 한 번씩 두 번. 신부는 두 번씩 두 번 서로에게 예를 갖춘 인사도 이어집니나. 왜 신부는 4번을 할까? 의아해하던 찰나. 사회자 역할을 하는 집례사가 그 뜻을 설명하셨지요. 음양이 홀수와 짝수이기에 그 이치에 따른 것이래요. 술을 마시기 전 머리 높이 들어올려 하늘에 감사드리고 바닥에 내려 땅에 감사드리는 의식이 행해졌지요.



술잔은 표주박이었어요. 반으로 쪼개진 표주박은 짝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으며 둘이 합쳐짐으로써 온전한 하나를 이룬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해요. 라이브로 듣는 풍악소리가 여유당의 공기를 따뜻하게 합니다.



마지막 순서로 신랑이 시 낭독을 하였습니다. 정약용 선생이 회혼례 당일 부인에게 선물하려고 만든 시였데요. 축하객 앞에 낭송되지 못한 시가 울려 퍼지는 여유당, 그 애틋한 사연에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여유당에서 여유로운 가을 정경을 맞이한 날입니다.

육십 년 풍상의 바퀴 순식간에 흘러갔는데
복사꽃 화사한 봄빛은 신혼 시절 같구려
리와 사별은 인간의 늙음을 재촉하건만
슬픔 짧고 기쁨 많아 임금 은혜에 감격하네


이 밤의 목란사 소리가 더욱 좋고
그 옛날의 하피는 먹 흔적이 아직 남았네
갈라졌다 다시 합한 게 참으로 나의 모양이니
두 합한 주 잔 남겨서 자손에게 물려주리라

-- 정약용 1836년 作-
실학박물관 전시실 회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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