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 김애란

마음에 와 닿았던 문장들과 짤막한 감상

by 물비늘

<벌레들>

어쨌든 견뎌내야 했다. 모두가 그러고 있으니까.
모두가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으니까. (65쪽)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이 단편에서 흐르는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든다. 가장 힘들고 가장 평범한 자들과 함께하는 분위기. 겉만 번지르르 한 것이 주는 쓸쓸함을 잘 알고 있는듯한 문체. 용대라는 주인공에게 절로 마음이 간다.


택시 경력 5년이 넘는 용대는 서울의 괜찮은 식당을 속속들이 알았다. 처음에는 유명해지고 다음에는 천박해져버리는 음식점이 아니라, 허름하고 보잘것없지만 맛 하나만은 단정한 그런 집들을 말이다. (139쪽)


- 김애란 작가가 맛집에 대해 정말 잘 아네 ㅠㅠ


대화를 주도한 건 명화였다. 차분하고 아늑하게. 가끔은 질경이처럼 푸르고 질기고 흔한 웃음을 터뜨리며. (144쪽)


- 명화라는 인물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표현이다.


풍선 끝 부력에 매달린 사람들은 둥실둥실,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145쪽)

그러면서 한 손으로 지훈의 손을 꽉 잡았다. 땀이 흥건한 게 축축하니 더운 손이었다. 지훈은 그때 삼촌 손의 촉감이, 그 뜨거움이 참 싫었다. 지훈에게 용대의 인상이란 그런 것이었다. 무더운 날, 눈치 없는 사람이 내미는 뜨거운 악수 같은 것, 용대는 선산에 도착할 때까지 지훈의 손을 놓지 않았다. (159쪽)



<하루의 축>


하지만 이런 역동적인 풍경과 달리, 멀리 바깥에서 본 인천공항의 모습은 고요하기만 했다. 공항 리무진 버스에서 소리가 소거된 채 나오는 연합뉴스 화면처럼 그랬다. 허허벌판 섬 한쪽에 외따로 핀 문명의 꽃이라 그런 듯했다. 현대의 복잡하고 거대한 시스템이 정적으로 평화롭게 돌아갈 때, 그 무탈함이 주는 이상한 압도, 안심, 혹은 아름다움 같은 것이 공항에는 있었다. 사람들은 그걸 길게 뻗은 고속철도나 우아한 현수교, 송전탑에서도 느꼈다. (176쪽)


- 하루의 축도 너무너무 좋다. 사람들이 왜 물건을 흘리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 되는 기옥씨가 좋다. 감정을 절제하고 기옥씨의 설움을 설명해주는 화자의 톤이 좋다. 기옥씨의 설움과 기옥씨의 아들 영광이의 어머니에 대한 차가운 태도가 마음 아프다.



<큐티클>

열차가 덜컹일 때마다 내 속에, 그리고 캐리어 속 텅 빈 어둠이 표 안 나게 흔들렸다.


- 캐리어 속 어둠이 흔들린다고 침착하고 담담하게 표현한 것이 마음에 든다.


- <큐티클>에서는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아닌 정착하고 싶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같은 여성이지만 다른 여성에 대해 갖게 되는 경멸의 감정—사회가 만들어 낸 여성 혐오에서 일정 부분 기인한 —도 묘사가 잘 되어있는 것 같고, 대세에 따르고 싶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이 애틋하고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그렇게 오래 여행 가방 옆에 있자니 어쩐지 우리가 떠나온 사람 떠나갈 사람이 아니라 멀리 쫓겨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꽤 오래전부터 그렇게 커다란 가방을 이고 다녔던 것 같은 기분도. (244쪽)


- 이제 <비행운>의 단편을 두 개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에서 기록하자면, 김애란의 <비행운>은 흑백 영상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러나 색조는 없지만 그 흑백의 주인공들은 결백하고, 순진하며, 그들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 흑백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영상을 보여주었다기 보다는 사회의 시련 앞에 무너지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주인공들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일깨워주는 것 같다.



<서른>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돌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예요. 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316쪽)



책의 표지와도, 내용과도 조화로운 것 같아 내가 최근에 그린 수채화 그림을 첨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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