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2(일) 넬스룸 후기

<Christmas in Nell's Room>

by 물비늘

*셋리스트 스포가 있습니다!



지난 22일 일요일 넬의 <Christmans is Nell's Room 2019>, 줄여서 '2019넬스룸 혹은 2019넬클콘'에 갔다 왔다. 지난 8월에 갔던 내 인생 첫 콘서트였던 넬 클럽콘서트 이후로 두 번째였다. 넬 멤버들이 올해가 당신들의 인생의 정확히 절반 동안 '넬'로 살아온 해라며 2019년이 당신들의 전환점이었다고 했듯이, 나에게는 이번 콘서트가 넬에 더 깊게 빠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넬 노래 제목도 모르고 가사도 제대로 안 듣는 불성실한 팬이었던 내가 가사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었다고 할까나. 우선 셋리스트는 아래와 같았다.




<셋리스트>
Cliche
One Time Bestseller
Go
Beautiful Stranger
A to Z
무홍
All This Fxxking Time
치유
Dear Genovese
Cliff Parade
오분 뒤에봐
Home
일기오보
Love It When it Rains
환생의 밤
소멸탈출
Ocean of Light
기억을 걷는 시간
Dream Catcher
Grey Zone


-앵콜곡-
침묵의 역사
Slow Motion
꿈을 꾸는 꿈




1. 난 음악을 딴짓하면서 많이 듣는 편이고, 원래 약간 사오정 기가 있어서(실제로 대화할 때 잘못 듣고 헛소리를 많이 한다) 노래 가사를 잘 듣지 못한다. 그리고 앨범 전체를 한 번에 연속재생해서 듣기 때문에 노래 제목도 잘 모른다. 그렇다. 콘서트 내내 제목을 알아차린 곡이 별로 없다는 것에 대한 변명을 미리 하자는 거 맞다. 심지어 <Grey Zone>은 콘서트 3시간 전에 친구 만나기 직전에 듣던 곡인데도 못 알아차렸다.


2. 이런 불성실한 팬이 가사에 더 집중해서 들어야겠다고 반성하게 한 곡이 바로 <Go>였다. 파워포인트에 있는 '밝기변화' 애니메이션 효과 같은 것으로 스크린에 가사를 띄워주었는데, 가사가 참 소박하면서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다시 꺼내어 필사하기 시작하면서 느꼈던 언어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느꼈다고 해야하나.


"끝이 없는 겨울 얼어붙은 서울
올려다 본 하늘 온통 너란 그늘"
-<Grey Zone> 중에서


3. 이번 콘서트는 정규 앨범인 <Colors in Black>이 발매된 후의 첫 콘서트여서 그런지 셋리스트 23곡 중 9곡을 신곡이 차지했다.(신곡을 전부 공연한 것이다.) 나는 김종완의 초기 앨범 감성을 더 좋아하는 팬이기에 이번 앨범에 정을 붙이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 콘서트에서 비트도 가사도 신났고, 스크린 영상도 유난히 신경을 썼는지 화려해서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실제로 이번 앨범이 넬의 앨범 중에서 가장 밝고 신나는 앨범이기도 하다.) 넬의 라이브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했다. 물론 '오분 뒤에 봐'를 공연할 때 스크린에 나왔던 물속 방에 해파리랑 고래가 유영하고 있던 영상은 너무 뜬금없어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CG팀이 영상 만드느라 꽤나 고생했을 것 같은데 안타깝다... 그래도 새 앨범은 효과적으로 각인시킨 것 같네요 다행


4. 넬 클콘에 대해 한 번이라도 검색해봤던 사람은 알겠지만 조명만큼은 정말 끝내줬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Cliff Parade'였다. 'Let it crash' 가사가 반복되는 부분에서 보여준 격렬하고 역동적이게, 스스로 부딪히며 부서지는 기하학적인 형상들, 계속 교차하며 반복되는 빨간색/초록색의 화면, 그리고 양쪽 사이드스크린에서 보여준 고장난 티비화면에 나오는듯이 날카롭게 흘러내리는 멤버들의 형광 초록빛 형상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스스로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절망과 상실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는 넬 만의 매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5. 나와 같이 콘서트를 보러간 친구 ㅅ도 그랬단 것을 나중에야 알았지만, 나 또한 ㅅ 몰래 눈물을 많이 흘렸다. ㅅ도 말했지만 넬은 2012년 말에 시작한 중력 3부작(<Holding Onto Gravity>, <Escaping Gravity>, <Newton's Apple> 앨범을 말한다.)을 기점으로 점점 앨범의 색깔이 행복한 쪽으로 바뀌는데, 그 이전에 발표된 곡들에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신기하게 이런 넬의 노래에서 진심어린 위로를 받게 되는데, ㅅ은 김종완이 누구보다도 힘들어봤고, 섬세한 공감을 바탕으로 위로하기 때문에 그 위로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라고했다. 그 덕분에 요즘 고민하고 있던 '좋은 위로'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6. 저번 클럽 콘서트에서 알게 되었는데, 넬은 대표 히트곡인 '기억을 걷는 시간'을 모든 콘서트에서 필수적으로 부른다고 한다. 곡 자체는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가볍게 소비되는 것 같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근데 이번 콘서트에서 김종완이 나름 팬서비스를 한다고 기걷시를 부르면서 수줍게 공연장을 한 바퀴 도는데, 내 자리가 2층 1열이여서 진짜 손 뻗으면 잡아줄 수 있는 거리로 김종완이 지나가는 것이었다! (물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려서 손은 뻗지 못했다. 바보다.) 그러더니 ㅅ 바로 옆에 있던 계단으로 올라와서 내 2m 거리에 서서 노래를 한 동안 부르다가 갔다. 진짜 모든 사고가 정지되었고... 그를 자세히 볼 틈도 없었다... 그 이후 기걷시는 나에게 정말 특별한 곡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그리고 손이라도 뻗을 걸 후회했다는 이야기.


-- 그렇게 김종완은 다음 콘서트 티켓 두 장 판매를 확보했답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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