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인생의 주인공에서 아기의 '조력자'라는 조연으로

by 마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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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야, 어제 아빠랑 엄마는 오랜만에 와인을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너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빠는 술이 조금 쌘 편인데 엄청 쌘 것은 아니고 소주 1-2병 정도 정신을 차리고 있고 3병이 넘어가면 언제 기억이 날라갈 지 모르는 정도란다. 엄마는 소위 말하는 '알쓰'인데, 연애할 때부터 술을 못마셔서 아빠가 좀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몸에 안받는 지 정말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새빨게지고 금새 취해서 잠들어버리곤 한단다.


그래서 연애를 시작할 때는 그렇게 와인 한잔 안마셔주었거든. 아빠는 그게 엄마가 '내숭 떤다'라고 생각했었지. 빠르게 친해지고 싶고 더 알아가고 싶은 사람과는 술자리를 통해서 속마음도 알고 술버릇도 알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단다. 여자친구로써 ' 술을 못마시는 것'이 그런 의미에서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술을 못마시는 여자'는 참 좋았다. 부부싸움을 하고 육아로 스트레스를 받고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술로 그 날의 기억을 날려버리는 방법이 아닌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것을 지켜내는 모습이 좋았다. 물론 술을 못마시기에 주변의 친구들도 다들 술자리에서 만나는 법이 없었고 남편으로써 걱정이 없었다. 클럽, 나이트클럽 한번 못다 본 너희 엄마는 술도 못마시기에 누군가는 인생의 즐거움을 못 느껴봤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기에 아빠는 새로운 많은 것을 엄마에게 경험시켜주고 싶었다.


아빠가 가장 잘하는 분야는 '영어'와 '해외여행'이었거든. 그래서 엄마를 데리고 연애 시작했을 때부터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까지 매년 2-3번씩 해외여행을 다녔다. 돈이 많아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둘이 벌어 반반씩 데이트 비용을 냈고, 그 데이트 비용의 절반을 해외여행을 위해 저축했었다. 둘이 한달에 40만원씩 모아서 6개월 모으면, 동남아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고 조금 더 모으면 유럽으로 여행을 갈 수 있었다.


친인척, 친구들, 주변사람들은 우리가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는 것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고 돈을 하나도 못모을 거라 생각했을 지도 몰라. 엄마 아빠는 사실 해외 여행을 자주 가느라 남들처럼 맛있는 맛집에 가거나 좋은 카페를 가거나 국내 여행지를 가거나 하지 못했단다. 그 돈을 아껴 해외여행에 '몰빵'했지. 그런 것이 이제는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KakaoTalk_20230417_093628879.jpg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프라하 카를교'. 아빠는 벌써 2번째 방문 ^^
KakaoTalk_20230417_093628879_02.jpg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오스트리아 빈의 시청사 크리스마스마켓'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참 많이도 엄마와 다녔다. '필리핀', '홍콩', '마카오', '태국', '프랑스', '독일', '체코',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대만', '일본', '괌', '사이판', '하와이', '미국 서부', '베트남'.... 기억나는 것은 이정도네. 아빠는 해외 학회 참석이 많아서 조금 더 많이 다녀오긴 했는데, 나가서 좋았던 곳은 엄마와 꼭 다시 가려고 노력했다.


2021년에 코로나19가 발생하고 우리 아기가 태어나면서 엄마와 아빠의 여행은 잠시 멈추었다. 마지막 여행이 '2020년 12월 친할머니와 고모와 함께 갔던 괌 여행'이다. 이제 그로부터 벌써 2년이 넘게 흘렀다. 아빠는 사주팔자에서 대부분에 운세에 '역마살'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너희 할아버지는 철도청 역무원이셨어서 어렸을 때 참 많이도 이사를 다녔다고 해. 아빠는 물론 기억이 없다. 그리고는 24살, 25살 때 처음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났고, 그 이후로 1년도 빼놓지 않고 해외를 한번씩은 꼭 나갔다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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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까를교에는 '프라하의 성인 네포무츠키 신부님 동상이 있는데, 왼쪽을 만지면 소원을 이루어지고 오른쪽을 만지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는 전설이 있단다. 아빠는 처음 2018년 7월에 출장으로 프라하를 처음 방문했고 '동상의 오른쪽'을 만지며 엄마와 꼭 다시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2018년 12월 엄마와 다시 프라하를 왔고, 이번에도 엄마가 동상의 오른쪽을 만지며 다시 오게해달라고 기도했어 ^^ 사진 보이지?


엄마가 오른쪽을 만졌으니 언젠가는 다시 가게 될 것 같아. 다음 번 '프라하 여행'은 우리 아기와 함께 할 거고, 그때는 우리 아기가 '소원'과 '또 다른 여행' 중 선택해서 잘 만져볼 수 있도록 하렴.


언제 다시 우리 가족의 여행이 시작될 지 모르겠다. 아마도 하늘이 우리 아기를 잘 키우라고 시간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빠의 강력한 '역마살'을 누르고 2년이 넘게 한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너의 기운이 이미 아빠를 충분히 넘어섰기에 그렇다고 생각해. 이제는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라 우리 아기의 '조력자'라는 조연이 된 것이겠지. 떠오르는 우리집의 태양을 잘 지켜주고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이제는 제3막일지 4막일지 모르는 다음 인생의 장에서 아빠의 역할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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