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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만의한국사 Jan 26. 2021

울어본 적이 있는가

나만의 한국미술 맛보기. 추사 김정희가 아무 종이에 세한도를 그린 이유

추사 김정희 <세한도>

왜 좋은 종이에 그리지 않았을까? 


세한도는 거친 일반 종이, 그것도 3장을 붙여서 그렸다고 한다. 붓, 벼루, 종이, 먹 어느 것도 좋은 것만 고집하는 까칠한 추사가 왜 그랬을까. 누군가는 추사가 일부러 그랬다고 한다.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세상에 알려 도움을 받고자 했다는 것이다.


세한도 그림 옆에는 추사가 지은 발문이 덧붙여 있다. 왜 제목이 세한도인지 알 수 있다. 세한은 <논어>의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에서 따온 말이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라는 뜻이다. 언제나 변함없는 제자 이상적을 늘 변치 않는 소나무에 비유한 것이다. 사마천이 말하길 사람들은 권세와 이익에 따라 모이고 권세와 이익에 따라 흩어진다고 하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러지 않는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가. 라고 반문하고 있다.


이상적은 추사가 제주도에 유배 갔어도 유배 가기 전이나 대하는데 변함이 없었다. 중국에서 나온 새 책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보내주었다. 중국과 조선, 한양에서 제주까지 왕래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나 하는 것은 당시 교통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런 이상적에게 보내는 그림이다. 일부러 거친 일반 종이를 골라 그것도 종이를 붙여 자신의 곤궁한 처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을까. 문은 고매한데 그림 속에 그런 속된 생각을 숨겨 놓았을까.


여러분은 선물을 받고 울어 본 적이 있는가.


이상적은 스승 추사로부터 세한도를 받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김정희는 이상적이 보내준 책을 받고 어땠을까. <논어>의 '세한~' 구절은 외우다시피 한 구절이라 특별할 것이 없다. 추사가 이 구절을 읽을 때 마침 이상적으로부터 또 한차례 120권 79책의 책이 도착했다면 그 감정이 어떠했을까. 추사도 울었을까.


감정이 북받치면 사람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시를 쓰는 사람은 시를 쓴다. 추사는 붓을 들었다. 그리고 <논어>의 세한 구절을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했다. 종이가 문제가 아니다. 종이를 가릴 시간도 없다. 좋은 종이면 어떻고 거친 종이면 어떤가. 지금 이 감정이 중요하다. 옆에 있는 아무 종이면 어떤가. 종이가 모자라 이어 붙여 그렸다.


추사는 그런 종이를 붙여 그림을 완성했다. 훗날 사람들은 세한도에 숨어있는 추사의 울컥한 마음은 보지 않고 그저 그런 종이에만 눈길을 줬다.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고자 일부러 그런 종이에 그렸다고.


추운 겨울에 보면 더 따뜻한 그림


추사의 세한도 그림은 실은 볼게 별로 없다. 황량한 배경에 집 한 채 나무 네 그루가 전부다. 그 가운데 한 그루는 말라비틀어진 늙은 고목나무다. 사람들은 추사가 제주도 유배지의 황량한 모습을 았다고 한다. 고목은 유배지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자신을 빗댄 것이라고 한다.


나 이렇게 어렵게 살고 있소. 구해주소.

겉보기에 추사가 그린 세한도는 그렇다.


사실 내가 세한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추사 전시회였다. 당시 도록의 설명은 아래처럼 되어 있는데 나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조금은 화도 났다.


"그림 속은 찬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황량하다. 척박한 유배지에서 느끼는 김정희의 심리적 추위를 표현한 것이다. 노송은 곧 말라죽을 것 같은 존재로 유배지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메말라가는 김정희 자신을 상징화한 것이다."


14년 만에 다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세한도 전시를 연다고 하니 이번에는 내 생각을 거친 형태로라도 표현하고 싶었다.


추사는 황량하고 쓸쓸한 걸 그리려고 했을까. 가장 추운 걸 그리는 이유는 가장 따뜻한 걸 표현하기 위해서다. 세한도의 고목은 곧게 뻗은 나무에 기대어 있다. 세한도 두루마리에 위당 정인보는 이렇게 썼다. '쓸쓸한 그림을 그리려고 한 게 아니라 변치 않는 을 표현한 것'


고목은 추사고 곧은 나무는 이상적이다. 추사는 제자 이상적에게 기대어 있다. 권세와 이익에 따라 변하지 않는 제자에게 기댄 고목만큼 당당한 나무가 있을까. 만약 그만한 제자가 있다면 나는 그 누구보다 인생을 잘 살았다고 얘기할 수 있다.


다시 세한도를 바라보자. 황량하고 쓸쓸하고 춥게 보이는가. 고목과 곧은 나무가 만난 지점에 스며 나오는 따스한 온기는 모든 추위를 녹여내는 듯하다. 추운 겨울에 보면 더 따뜻한 그림이 세한도다.


세한도에는 저 멀리 소나무 두 그루가 곧게 뻗어 있다. '나중에 제가 또 버팀목이 되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14년 만에 다시 본 세한도, '집'의 비밀을 풀다


세한도를 볼 때마다 켕기는 것이 하나 있다. 집이다. 나무는 그럭저럭 설명을 하겠는데 집은 뭘까. 어떤 의미일까. 질문이 들어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불안하기도 했다. 유홍준 선생과 박철상 선생은 세한도 속 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그런 소나무는 어디서나 볼 수 있고, 그렇게 생긴 집 역시 제주도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에 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그런 식으로 *원창(圓窓)을 낸 집이 없다. 이 그림의 예술적 가치는 실경에 있지 않다. 실경산수로 치자면 이 그림은 0점짜리다" - 유홍준, <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중

*원창 - 틀을 둥글게 짜서 만든 창


"기다란 집 한 채가 소나무 뒤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둥근 문이 하나 있다. 이것은 실제 집을 묘사한 게 아니다. 상상 속의 집이다. ~ 아무도 없는 텅 빈 집, 그것은 추사의 의식세계이기도 하다. 적막감과 쓸쓸함이 가득할 뿐이다. 밖에서 아무리 불러도 인기척이 느껴질 리 없다. 한없는 외로움의 상징이다." - 박철상, <세한도> 중


이번 전시회 때 세한도를 다시 보고 오랜 궁금증이었던 '집'의 비밀을 나름대로 풀었다. 집은 중국 형식의 집이다. 추사는 일부러 중국의 집을 그린 것이다. 왜 중국식 모양의 집을 그렸을까. 그렇다면 집 안에는 누가 있는 걸까. 추사가 중국에서 만났던 스승 옹방강, 완원과 함께 있는 건 아닐까 상상해본다.


옹방강이 누군가. 20대였던 추사에게 꿈을 심어 주었다. 추사를 두고 "경술과 문장이 해동제일"이라고 했다. 추사는 옹방강을 본받는다는 의미로 옹방강의 호인 '담계'의 '담'을 따 '보담재'란 호를 지었다. 또한 완원을 흠모하여 완원의 성인 '완'을 따 '완당'이란 호를 짓기도 했다. 세한도에 '완당'이라 쓰고 그림과 발문을 이어주는 곳에 '완당'이란 도장도 찍었다.(아래 그림 표시 부분)

'완당' 도장

아마 어려운 제주도 생활을 하던 중 이상적에게 받은 <만학집>을 본 순간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두 스승이 생각났을 것이다. <만학집>은 옹방강이 제목을 쓰고 완원이 서문을 쓴 책이다.


추사는 스승을 떠올리게 한 제자 이상적에게 집과 나무가 어우러진 세한도를 그려주었다. '집'에는 자신과 스승 옹방강, 완원과의 애틋한 정을, 곧은 소나무에 기대 있는 '노송'에는 제자 이상적과의 애틋한 정을 담지 않았을까.


글. 역사학자 조경철

편집. 집배원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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