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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만의한국사 Feb 27. 2022

국립중앙박물관 신라 불교 공인 연대 살펴보니

국립중앙박물관 연표
국립중앙박물관 '신라실' 설명 안내판

국립중앙박물관 연표의 신라의 불교 공인 연대 527년도 문제다. 이차돈이 순교한 연대를 527년으로 보는 견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527년은 삼국유사가 주장하는 견해이다. 일연 스님이 그랬으니 당연히 맞겠지 생각하겠지만 이 경우는 그렇지 않다. 신라의 김대문과 최치원은 528년으로 보았다. 이를 김부식도 따랐다.


이차돈 순교 연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어느 책이 맞을까?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이차돈입니다. 이차돈이 절을 짓다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죽게 됩니다. 이차돈이 죽을 때 목에서 흰 피가 솟아 나와 부처의 권위를 인정하게 되었고 마침내 불교를 받아들여 절도 짓게 됩니다. 이때 신라 최초로 지은 절이 흥륜사입니다. 그럼 이차돈이 순교한 연대는 언제일까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 가장 많이 보는 책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입니다. 삼국사기는 유학자인 김부식이 썼습니다. 삼국유사는 승려 일연이 썼습니다. 두 책 가운데 어느 책이 더 삼국시대의 역사를 잘 기록했을까요? 두 책을 꼼꼼히 비교해 보아야 알겠지만 여기서는 이차돈의 순교 연대에 대해서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주위에 한국사에 관한 연표가 있으면 한번 찾아보세요. 아니면 인터넷에서 ‘이차돈’을 한 번 검색해 보세요. 이차돈이 순교한 연대가 나와 있습니다. 몇 년인가요? 어떤 곳에서는 527년 어떤 곳에서는 528년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삼국사기는 528년, 삼국유사는 527년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분들은 대개 삼국유사의 527년을 따르고 있습니다. 어느 게 맞을까요?


1) 삼국사기 528년이 맞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모든 역사 연대는 삼국사기를 기준으로 합니다. 주변에 있는 모든 한국사 연표가 삼국사기를 따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차돈의 순교 연대도 삼국사기의 528년을 따라야 합니다.


2) 삼국유사의 527년이 맞다

 모든 한국사 연표가 삼국사기를 따르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고구려 광개토왕의 경우 삼국사기는 392년 왕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광개토왕릉비에는 391년 왕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광개토왕이 왕이 된 해는 삼국사기를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차돈의 순교 연대도 528년이 아니라 527년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불교에 대해서는 유학자인 김부식보다는 승려인 일연의 말이 더 옳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528년이라고 했지만 대각국사 의천 스님의 비문을 쓸 때는 527년이라고 했습니다. 김부식은 527년과 528년 두 연대를 혼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일연도 527년이라고 했으므로 두 사람의 교집합을 찾으면 527년이 됩니다.


3) 어떤 게 맞는지 모른다

김부식이나 일연이나 두 분 모두 500년도 더 된 옛날 일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아마도 자신들이 본 기록에 근거해서 썼을 겁니다. 원래 기록에 527년, 528년이라고 되어있기 때문에 연대가 달라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럼 왜 옛 기록에 527년, 528년 두 기록이 생기게 되었을까요.


그건 나이 계산과 비슷합니다. 어떤 사람이 지금 10살이라면 이 사람은 언제 태어났을까요? 2009년에 태어났을까요? 2010년에 태어났을까요? 태어난 해를 1살로 치면 2010년이 맞고 태어난 다음 해를 1살 즉 만으로 계산하면 2009년이 맞습니다. 이차돈의 순교 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차돈의 순교 연대는 법흥왕 15년입니다. 그럼 법흥왕 1년은 언제일까요? 왕이 된 해를 1년으로 하면 528이고 왕이 된 다음 해를 1년으로 하면 527년이 됩니다. 따라서 527년 528년 두 연대 모두 틀렸다고 할 수도 없고 모두 맞다고 할 수 없습니다.


4) 그래도 527년이 맞다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 책 안에서도 같은 사건의 연대를 다르게 쓰고 있습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법흥왕 때의 일을 같은 삼국사기 다른 기록과 비교해 보면 1년 차이가 나는 곳이 자주 있습니다. 그러니까 삼국사기 이차돈의 순교 연대도 한 기록에서 법흥왕 15년(528)이라고 했지만 법흥왕 14년(527) 일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더구나 삼국유사에서도 527년이라고 했으므로 삼국유사의 527년이 더 정확한 연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5) 아니다 528년이 맞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말고 이차돈에 관한 기록은 더러 남아있습니다. 신라 때 세운 이차돈 순교비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신라시대 이차돈과 관련된 기록에는 정확한 연대가 나오지 않습니다. 두루 뭉실 법흥왕 때라고 나옵니다. 딱 한 자료 최치원이 지은 봉암사지증대사비에 순교한 연대가 나옵니다. 해당 비문의 연대를 추정하면 528년입니다. 그러니까 신라 시대 남아있는 기록을 근거로 한 정확한 이차돈 순교 연대는 528년입니다. 


 527년은 고려시대 들어와 김부식이 지은 대각국사 의천 비문과 일연의 삼국유사에 새로 등장한 연대입니다. 한 때 527년이라고 했던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528년이라고 했는데요, 김부식은 528년의 근거를 김대문의 계림잡전에 근거했습니다. 물론 계림잡전은 지금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라시대 기록인 봉암사지증대사비와 계림잡전에서 528년이라고 했으므로 이차돈의 순교 연대는 527년보다 528년이 맞다고 볼 수 있겠네요.


6) 그럼 왜 527년이 되었을까요?

앞에서 말한 나이 계산처럼 1년의 차이가 났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527년으로 하면 그동안 생각하지 못한 부수 효과도 있습니다. 527년은 달마가 중국에 선종을 전한 연대이기도 합니다. 달마도 반대파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이차돈의 순교와 달마의 선종 전래가 멀리 거리는 떨어졌지만 성인들의 마음은 통하는 게 있어서 두 사건이 527년 동시에 일어났다고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신라 말 고려 초에 선종이 보급되고 널리 전파되면서 한국불교사의 시작인 이차돈의 순교 연대를 중국 선종사의 시작인 달마와 연관시킨 것이지요.


한국 사상사의 전개과정을 보면 한국 사상의 흐름을 중국에 짜 맞추려고 한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게 이차돈의 순교 연대 527년 설입니다.


글. 역사학자 조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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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국립중앙박물관 연표, 이 부분도 아쉽다 (부여의 멸망과 남부여의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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