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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딩 숲속 월든 Mar 12. 2023

자경문(自警文)

살림살이를 펼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불교적 깨달음의 요체인 무아와 연기에 대한 이해와 체득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면서 다듬어 나가는 것이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을 언어를 통해 구체화 함으로써, 망각의 영역으로 흩어질 것들을 갈무리하여, 이어지는 도약의 거름으로 삼는 것이다.

또한 살림살이를 펼친다는 것은 소통이다. 스스로와의 소통 그리고 외부와의 소통이다. 스스로와의 소통이 먼저다. 아니 그것이 전부다. 나머지는 알아서 저절로 펼쳐진다.

잘 해내려고 하면 어려워진다. '잘' 하려는 의도 뒤에 숨어 있는 세속적 욕망을 본다. 그럴만하니까 흘러나온 것이니 문제 될 것 없다. 다만 잘하려는 그 의도가 그동안 스스로를 고단하게 만든 원인이었음을 분명하게 알면 된다.

또한 뭔가를 꾸준히, 성실하게 행한다는 것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큰 이득을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되다 보면 자칫 익숙한 것에 고착되어, 어렵게 들어선 자기 해체의 흐름에 역행하는 부작용이 있음을 분명하게 알면 된다.

깨달음의 핵심은 생각의 부작용에서 벗어나는 것이지 생각의 폐기가 아니다. 빈대(착각의 나) 잡으려다 초가삼간(기능의 나) 태워서는 안 된다. 쪽팔리고 부끄럽고 찌질한 생사심과 사심을 억압하고 부정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깊게 들여다 봄으로써 그것을 일으킨 인과에 밝아지는 것이다. '솔직함'이 중요한 이유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오래 멀리 가려면 느리더라도 함께 가야 한다. 아니, 함께 가는 것이야 말로 제대로,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이 길에서 함께 걷는 이들은 나침반이자 거울이 되어 서로를 이끈다. '도반'이 중요한 이유다.

* 자경문(自警文) : 수행자가 스스로 경계하고 지켜야 할 것을 적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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