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빌딩 숲속 월든 Apr 15. 2023

브레이크 포인트 (break point)

넘침과 모자람의 경계는 때와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필요와 불필요의 경계 또한 마찬가지다. 깨달아 마쳤다고 해서 그전에 심신에 배어 있던 습관들이 일괄 타파되지는 않는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렇다. 깨달음의 효용은 스스로도 몰랐던 온갖 습관들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고, 그러한 습관들의 작용을 제3자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알게 되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그러한 습관들이 드라마틱 하게 사라지거나 변하는 것은 아니다.

담배로부터 놓이고 물러난지 오늘로 3,766일(만 10년 4개월 2일)이 되었다. 끊었다고 하지 않고 놓이고 물러났다고 표현한 이유는 다시 담배를 입에 대는 순간 녹슬어 있던 흡연의 회로가 번쩍이며 다시 활성화될 것임을 분명하게 알기 때문이다. 10년 이상 흡연 회로를 우회한 경험 덕분에 무의식적 습관에 대한 나름의 인사이트를 얻었다. 오래 묵은 습관에 크랙을 내기 위해서는 정공법보다는 우회로를 택하는 방식이 나에게는 더 맞는다는 것.

오래된 습관일수록 무색무취(無色無臭)여서 알아차리기 힘들고, 작용하는 힘도 세다. 내 경우 대충과 중간이 잘 없고, 한 번 꽂히면 오버페이스 하는 경우가 많다. 즉, 과잉하고 넘치는 경우가 대체로 많은 편이다. 예를 들어 운동과 취미생활 등을 꾸준히 하는 것을 넘어 강박적으로 하게 되어, 건강과 즐거움을 위해 시작한 것이 오히려 심신을 상하게 하고, 멈추지 못하고 폭주하는 부작용을 자주 겪었다. 넘침과 모자람의 경계에 대해 알지 못했고, 알았더라도 그 경계에서 물러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깨달음의 가장 큰 효용은 착각하여 폭주하게 된 자동차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필요성을 알고, 브레이크 위에 발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브레이크를 밟는 것. 멈추기 위함이 아니라 과속하지 않기 위함이다. 속도가 충분히 줄면 다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속도를 낸다. 깨달음 이후 점수의 과정을 통해 내면화되는 것은 과속하기 전 '브레이크 포인트(break point)'에 대한 감각이다. 이 지점은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므로 충분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체득되는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대인관계, 회사일, 운동, 취미생활을 하면서 과잉할 것 같은 브레이크 포인트가 느껴졌을 때 스스로에게 '워워(calm down)'라는 주문을 외우고 있다. 써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생각 걷어차기'의 토템처럼 '브레이크 포인트'의 토템으로 제법 괜찮을 것 같다. 과잉하지 않다는 것은 결국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수준에서 멈출 줄 아는 것이다. 그러한 브레이크 포인트를 깊이 체득하는 것이 결국 '지혜'가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날카롭게 무뎌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