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같은 시간에 일어나려는 노력, 매일 운동하려는 노력, 체중과 식단을 관리하려는 노력, 인간 관계에 조심하려는 노력. 이렇듯 아직도 많은 노력과 애씀, 조작과 추구의 습관이 여전히 작용하는 것이 보여진다.
조작과 추구, 애씀과 노력도 '저절로'인 연기적 현상이다. 과거 훈습된 무의식의 연장이므로 점차 놓여지고 물러서는 무의식 회로로 대체되어 갈 것이다(점수의 과정).
"지금 여기, 저절로!"
생각의 부작용에서 놓여지는 새로운 토템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미래를 오가며 떠도는 생각이 환기되고, 그 즉시 드러난 생각 바탕이 저절로임이 확인된다.
환기되는 순간, 말 그대로 지금 여기의 감각이 즉각 드러난다. 하얗게 쌓인 눈, 뽀드득 눈 밟는 소리, 뺨에 부딪히는 차가운 바람. 자극에 대한 인식은 분명 생생한데, 생각은 형광등처럼 켜졌다 꺼졌다 깜빡이며 작용한다.
이 공부를 하면서 혼란스러웠던 부분이 있었는데, 생각이 따르지 않는 인식 작용에 대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쾅!'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찰나지만 그 소리의 정체를 모르는 순간이 있고, 잠시 후 '아! 저건 문을 세게 닫는 소리네!'라는 언어로 해석된 생각이 따른다.
나는 생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소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딱!'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 뒤에 '아! 이건 죽비 소리야!'하는 해석이 뒤 따랐다. 자극(소리)→인식(들림)→해석(죽비소리) 이런 순서로 말이다. 인식과 해석 사이의 아주 짧은 간격을 의식적으로(생각이) 알게 된 것이다.
어찌보면 누구에게나 있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지만 '생각이 전부'라는 착각에서 처음으로 벗어나게 된 계기였다. 해석이 뒤 따르지 않는 '들림'은 언어로 해석된 생각과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뇌가 외부의 자극을 '알게'된 '현상'이다.
'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의 저자 소공 김영식 선생님은 "자극에 대한 인식은 일어나되 생각이 따르지 않는 상태를 실상계가 드러난 상태이고, 인식도 현상계의 작용이며 현상계에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실상계의 단면"이라고 하셨다.
우리에게 '괴로움'이라는 부작용을 일으키는 '생각'은 언어를 통해 해석된 '시비호오'적 생각들이다. 이러한 생각들에 갇혀있는 순간 '지금 여기!'로 환기되면 '지금 여기'의 감각 현상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찰나지만 감각과 해석된 생각 사이에 놓여지게 된다.
생각과 무관하게 '저절로'인 것들에 주의를 기울여 본다. 해석된 생각이 없어도 대상이 보여지고, 소리가 들려지고, 숨은 쉬어지고, 몸은 움직여진다. 저절로 아닌 것이 없을 정도다. 이런 인식이 의식의 영역에서 점점 더 단단해지고 확장되는 느낌이다.
생각으로 생각 아닌 것들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생각으로부터 놓여지게 된다. 애써 생각에 맞서지 않고 우회하고 비껴간다.
2023년 1월 23일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