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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딩 숲속 월든 Feb 28. 2023

아픈만큼 성숙해지기를

설연휴 동안 몸살감기와 장염을 앓았다. 2주 전 아이들이 독감에 걸린 후, 지난주부터 목이 간질간질 한 것이 조짐이 좋질 않았다. 목이 붓는 것 같아 병원에 들러 약처방도 받았다.

목요일(1/19) 저녁에 과음을 하고 늦게 귀가를 했고, 잠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다음 날(1/20) 일찍 일어나 14km 이상의 종주 산행을 했다. 하산을 할 때까지는 큰 문제를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컨디션이 회복되는 것 같았다.

다음 날(1/21) 아침 목이 많이 부었고,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 루틴을 지킨답시고 헬스장에서 런닝 운동을 강행했다. 운동 말미에 몸상태가 안 좋아질 것 같음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설사를 했다. 감기몸살과 장염이 한꺼번에 찾아온 것이다. 머리가 지끈 거리고, 목구멍이 따가워 침넘김도 불편하고, 몸은 얻어 맞은 것처럼 욱신거리고, 속이 메슥거리고, 소화도 안되고, 먹는 즉시 설사를 했다. 몸 이곳 저곳의 통증으로 괴로울 뿐이었다.

어제(1/23)까지 3일간 무슨 정신으로 지냈는지 모를 정도로 심하게 앓았다. 다행히 어제 오후쯤 컨디션이 회복되어 집 청소도 하고, 1시간 정도 운동도 할 수 있었다.

짧은 투병기는 여기까지로 하고, '병'을 앓으며 무엇을 배웠는가? 아직 놓여지고 물러섬이 몸의 아픔과 무관하게 자동적으로 작용할 정도로 완전하게 체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

틈틈이 "지금 여기! 저절로!"의 토템을 던져봤지만 통증은 그저 통증일 뿐이었다. 다만, 그 와중에도 통증과 함께 일어나는 온갖 종류의 망상을 따라갈 때와 따라가지 않았을 때의 차이를 느꼈다. 망상의 내용을 따라가면 마치 헤어 드라이기의 '터보' 버튼을 누른 것처럼 통증이 증폭되는 듯 했고, 물러섰을 때는 본래 있어야 할 통증이 그대로 작용할 뿐임이 미묘하게 느껴졌다.

이제 좀 무예의 기본을 알았다고 우쭐해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무림 고수를 만나 제대로 얻어 맞고 쌍코피 흘리게 된 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분에 생로병사 中 '병'에 대해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병으로 인한 통증은 연기적 현상이다. 아픈건 아픈 거다. 어쩔 수 없다.

통증이 괴로움이 되는 이유는 거기에 생각의 온갖 해석이 덧붙기 때문이다. 통증은 '머리가 지끈거림, 속이 메스꺼움, 소화가 잘 안 됨' 등의 팩트들이다. 괴로움은 '짜증나! 설연휴에 아무것도 못하고 이게 뭐야!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아파야 하지? 그만 아프고 싶다! 어쩌고 저쩌고...' 등의 온갖 해석들이다.

그러한 해석에서 물러서지는 만큼 불필요한 괴로움이 가중되지 않는다. 깊이 들여다보고(이해), 많이 당해볼수록(경험) 숙련되어 단단해질 수 있다. 좀 더 인과에 밝아진다면, 이러한 병의 원인이 되는 어리석음(과음, 수면부족, 강박적 운동 등)부터 삼가게 될 것이다. 아픈만큼 성숙해지기를.

2023년 1월 24일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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