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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딩 숲속 월든 Feb 28. 2023

방편이 솟구치다

'방편'의 사전적 정의는 '그때그때의 경우에 따라 편하고 쉽게 이용하는 수단과 방법'이다. 즉,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다.

깨달음 이전에는 생각이 전부라는 착각, 내가 주인공이고 인생과 세상을 통제한다는 착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방편을 사용한다. 명상, 위빠싸나, 화두선, 조사선, 진언, 108배 등 불교적 방편를 비롯하여 수많은 방편들이 활용된다.

생각이 전부가 아니라는 이해가 의식의 영역에 명확하게 각인되는 깨달음 이후에는 이제 막 형성된 새로운 무의식 회로를 안정화 시키기 위해 방편이 활용된다. 불교용어로 이를 보림(保任,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키는 과정)이라고 하며, 건물을 지을 때 콘크리트 치기가 끝난 다음 유해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충분히 보호 관리하는 '양생(養生, Curing)'과도 비슷하다.

깨달음 이전과 깨달음 이후 보림의 과정까지 사용되는 방편의 양상이 다소 수동적이고 인위적인 반면, 깨달음이란 새로운 회로의 힘이 기존 회로의 힘을 명백하게 넘어선 돈오확철 이후 펼쳐지는 방편의 양상은 자동적이고 자연발생적이다.

내 경우 보림기간 동안 '놓여지고 물러나기', '지금여기 저절로'라는 만트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 만트라가 무겁고 번거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려놓고 지내보니 아무 문제가 없었다. 보림기간에 사용한 방편(만트라)의 효용은 생각의 관성으로부터 물러서는 회로의 힘이 생각의 관성을 넘어서는 시점까지다.

방편의 목적은 결코 생각의 말살(몰살, 삭제, 폐기)이 아니다. 문명사회에서 태어나고, 언어를 배운 이상 생각을 기반으로 하는 관념적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보림기간 이후, 즉 돈오확철 이후에는 생각(현상계)과 생각 아닌 것(실상계)을 생각이 동시에 수용하는 형태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이 맞춰지는 양상으로 방편이 펼쳐진다. 마치 자전거를 탈 때 왼쪽으로 치우치면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고, 오른쪽으로 치우치면 왼쪽으로 핸들을 돌려 균형을 맞춰 나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내 경우 심신의 긴장과 경직을 불러일으키는 시비호오적 생각이 펼쳐지는 순간 기존의 만트라가 읊어지기도 하고, 주변에 보여지고 들려지는 감각들에 주의가 기울여지는 등 다양한 방편들이 자동적, 자연발생적으로 활용이 된다. 보림기간에는 군대 훈련소와 같이 갖춰진 조건과 통제된 환경 속에서 매뉴얼화된 인위적인 훈련을 한 것이라면, 돈오확철 이후에는 실전에 투입되어 실시간으로 변하는 상황에 맞춰 주변의 지형지물 등을 자연스럽게, 유연하게, 능숙하게 활용하게되는 것과 비슷하다.

금강경에 나오는 뗏목의 비유처럼 뗏목을 통해 강을 건너게 되면 불필요한 뗏목을 버리는 것이 맞다. 나는 이 비유로 인해 생각으로부터 물러나게 해주는 방편을 아예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했었다. 강을 건넌 후에도 뗏목을 지고간다는 것은, 방편이 깨닫기 위한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방편 자체를 목적 삼는 어리석음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지, 깨닫고 난 이후에 방편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깨달음 이후의 삶은 현상계(생각)를 폐기하고, 실상계(생각 아닌 것)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닌 두 세계에 걸쳐 살아가는 것이며, 생각을 통해서만 실상계의 드러남을 알 수 있으므로, 두 세계를 오가는 '뗏목'은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필수불가결 하게 잘 써먹어야 하는 도구이다.

2023년 2월 5일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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