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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딩 숲속 월든 Feb 28. 2023

이미 그 상태

'깨달음'의 사전적 정의는 '뭔가를 깊이 생각하다가 알게 되는 것'이다. '뭔가'라는 목적어를 염두에 둔다면 깨달음의 대상이 무엇인가에 따라 깨달음의 범주(카테고리)가 달라지게 된다. 깨닫는 과정은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므로, '생각 아닌 것'을 알게 됨을 깨달음의 범주로 정의하는 '고오타마'적 깨달음은 생각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가장 근본적 깨달음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고오타마적 깨달음은 '생각을 통하여 생각이 아닌 것을 알고, 경험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여기서 '생각'을 '대상에 대한 언어적 해석'으로 한정 짓는다면, '생각 아닌 것'은 언어적 해석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대자연의 압도적인 경관에 할 말을 잃어 버리는 순간처럼 강렬한 것도 있고, 순간적으로 멍해지는 것처럼 비교적 가벼운 것도 있다. ​


일상 속에서 생각을 거치지 않은 앎의 현상이 간헐적으로 일어나지만, 이내 생각으로 뒤덮여 단순한 해프닝으로 지나쳐 버리게 된다. 고오타마적 깨달음은 바로 그러한 의 반복적 경험을 통하여 생각의 바탕이 드러나는 것이다. 굳이 왜? 언어적 해석의 주체인 '나'가 실재한다는 착각으로 인해 생기는 온갖 '시비호오'와 불멸하려는 '생사심'의 부작용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즉, 괴롭고 피곤하기 때문이다. ​


생각으로부터 놓여지는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단계에서는 생각 세계에 무게중심이 실린 상태로 삶이 펼쳐진다.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생각 아닌 것'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만, 곧바로 다시 생각에 뒤덮이게 된다. 이때 '생각 아닌 것'에 대한 이미지는 '매직아이'처럼 초점이 잘 맞으면 보였다가 안 맞으면 보이지 않는 '있다 없다' 하는 그런 일시적 현상으로 느껴진다. ​


생각으로부터 놓여지는 경험이 충분히 쌓여 임계점을 넘어서면, 생각의 무게중심이 '생각 아닌 것'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때 '생각 아닌 것'에 대한 이미지는 '이미 그 상태'라는 확신으로 다가온다. 조건이 맞으면 생겼다가 조건이 맞지 않으면 사라지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본래(本來), 언제 어디서나, 늘 그 안에 있었고,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음이 확연해진다. ​


'그것'은 철저히 경험의 영역이어서 '생각 아닌 것, 생각 너머, 생각의 바탕, 실상계'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이미 그 상태'임이 확인되는 순간,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온갖 시비호오를 일으키던 생각이 물러나 지며, 생각으로 인한 긴장, 불안, 두려움의 구름이 거두어지고, '편안함, 안도'가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앎'과 '됨'이 온전하게 '동행' 하는 마법의 순간이다.


2023년 2월 19일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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