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은 다르다."
영화「매트릭스」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비슷한 비유로 "지도와 영토는 다르다."는 말도 있다. 이미 들어서 알고 이해한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는 뜻이다.
등산이 취미인 나는 산에 가기 전에 미리 등산앱을 통해 경로를 세팅해 둔다. 물론 요즘은 등산로 정비가 잘 되어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지만, 발걸음 닿는대로 향하는 방랑이 아니라면, 최소한 출발지와 목적지를 정해 놓아야 계획한 시간 안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렇게 미리 준비를 하면서 다양한 상황에 대한 예측도 하고, 예전해 했던 산행의 기억을 덧 씌워, 새롭게 보게 될 장면들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막상 산행을 시작하게 되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눈 앞에 펼쳐지는 온갖 종류의 나무와 풀과 꽃들, 다양한 모양의 돌과 바위들, 예상보다 훨씬 더 가파른 오르막 등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엄청난 종류의 불규칙적인 자극들이 오감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
'길을 안다'는 것은 목적하는 바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책과 스승을 통해 "(불교적) 진리는 무아와 연기야. 무아와 연기를 이해하고 체득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편안해 질 수 있어."라는 정보를 얻게 된다. 처음엔 기존의 상식에 역행하는 낯선 정보로 의심과 거부감이 들지만, 정연한 논리와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가 잘 된 글 등을 통해 의심이 거두어지고, 제시된 다양한 수단(방편)을 통해 그 정보가 맞는지 확인해 볼 결심을 하게 된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것이 맞는지 경험하고 확인해 보는 것이다. 운동이 좋다는 정보를 머리로만 알고 있다가, 문 밖으로 나가 실제로 걷고 뛰어보는 것이다. 직접 움직이게 되면 근육에 자극이 생기고 새로운 뇌 신경망이 형성된다. 이것이 반복되면 근육과 신경망 모두 두껍게 강화 된다. 근력도 강해지고 운동하는 습관도 생긴다.
'길을 안다'는 것은 생각(언어적 해석, 사고기능)에 기반한 '앎'의 영역이고, '길을 걷는다'는 것은 생각 아닌 것(경험, 체득)에 기반한 '됨'의 영역이다. 인지심리학에서는 '기억'에 대해 이와 유사한 개념이 있는데, 언어에 기반한 기억을 '서술기억'이라고 하고, 경험에 기반한 기억을 '절차기억'이라고 한다. 서술기억은 이야기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절차기억은 자전거 타는 방법, 운전하는 방법처럼 몸으로 익힌 기억으로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길을 안다'는 것은 '길을 걷는' 경험에 대한 제한된 해석과 예측이다. 안다는 것은 아는 주체와 알려지는 대상의 분리를 전제로 한다. '나'와 '대상'이 분리되지 않은 전체이므로 '무아'이고, 그것의 펼쳐짐이 '연기'다. 본래 저절로 그러하므로 '실상'이고, 그것의 제한된 드러남이 '현상'이다.
다시 말해 '길을 아는 것'은 '앎=이해=연기=현상'이고, '길을 걷는 것'은 '됨=경험=무아=실상'이다. 이처럼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불교적 진리의 관점에서 보면 '길을 안다'는 것은 '무아와 연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것에 도달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고, '길을 걷는다'는 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 실제로 편안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