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요?
나는 연애예찬론자이다. 연애만큼 삶을 아름답게 빛내주는 다른 무언가를 아직 찾지 못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여기저기 숨겨진 행복을 찾아가는 모든 여정이야말로 그 자체로 소중하고 눈부시다.
물론 연애만이 인생의 전부라는 건 절대 아니며 연애를 한다고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는 꼰대마인드 또한 절대 아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의 모든 순간에 연애감성 한스푼이 더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연애를 하며 가장 좋은 점은 이 세상에 아무런 조건 없이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한 사람은 있다는 든든함일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내가 원할 때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고 나의 말을 의도없이 순수하게 들어주며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눈치 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은 풍요롭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시점에서 나의 소싯적 연애사를 살짝 공개하지 않을 수 없다. 남녀공학이었던 고딩시절 비밀리에 단행했던 롯데월드 데이트를 비롯하여 몰래 주고받던 연애편지들로 내 첫사랑은 시작되었고 대학 때도 긴 공백 없이 내 옆자리는 늘 채워져 있었다. 꾸준히 이어진 나의 연애사는 졸업 후 들어간 첫 직장 입사동기였던 구남친 현남편과의 결혼으로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결혼 후 나의 연애는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나의 원픽 한석규 오빠를 비롯하여 동원이, 제훈이, 최근에 선재에 이르기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그들은 손 닿을 수 없는 너무 먼 곳에 있었으니 허전한 마음 한 귀퉁이를 채울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나의 눈길은 저절로 딸들의 연애사에 다다르게 되었다.
다행히도 큰아이는 대학 1학년때 소개팅으로 만난 동갑내기 남친과 6년째 연애중이고 대학신입생인 둘째는 초딩시절 친구와 1년째 목하 열애중이다.
그들의 연애과정을 다 알 수는 없다. 초딩아이처럼 붙잡아 앉혀놓고 일일이 취조할 수도 없고 홍채와 지문으로 무장된 핸드폰을 몰래 열어볼 수도 없으며 스토커처럼 그들의 뒤를 밟기엔 내 체력이 따라와 줄 수 없는 탓이다. 비(밀)계(정)에는 초대받지 못한 채 간간히 공개인스스에 올라오는 사진 몆 장으로 유추해 볼 뿐인 딸들의 연애. 그들의 젊음과 환한 미소, 행복한 얼굴은 대리만족을 넘어서 동경의 마음까지 불러일으킨다.
지금껏 나는 드넓게 열린 마음의 소유자로 나름 매우 쿨한 엄마라 자부하며 살아왔다. 그런 내 자부심을 일거에 무너뜨릴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건이 도래하였으니 일명 남자친구와의 여행을 허락해 달라는 큰아이의 도전장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약 4년전 남자친구의 군입대를 조금 앞둔 시점, 내 눈치를 살피며 그녀가 어렵게 꺼낸 첫마디는 남자친구와 여행을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전에도 나의 친구들 혹은 아이친구엄마들과 이런 주제로 수다를 떤 적이 있었는데 보내줄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결론을 냈었다. 이런 요청이 아예 안 들어오는 게 제일 맘이 편하겠지만 일단 들어온 이상 달리 방도가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어디서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냔 말이다. 둘의 합작에 친구들의 조력까지 어우러진다면 깜빡 속아 넘어가는 것쯤이야 그리 어렵지 않은 일임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상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세계에서 부딪히자 그래 다녀오렴! 이런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듣는 순간 내 표정은 굳어졌고 머릿속 쿨한 엄마의 쿨한 허락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때까지 웬만하면 서로의 의견을 존중했던 사이였지만 N0를 외치는 엄마에게 그녀도 단호한 태도를 보였기에 우리 사이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나는 평소 자칭 타칭 매우 이성적인 사람으로 평가받아 왔는데 이때만큼은 이성의 끈을 완전히 놓아버려 찾을 길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차라리 친구랑 여행 간다고 거짓말이라도 하지"부터 시작하여 "내가 아들엄마라면 조금은 쿨하게 보내주지 않았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 "내가 허락하면 그쪽 부모가 뭐라고 생각할까" 하는 별의별 생각들이 꼬꼬무가 되어 나를 잠식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남친의 부모님은 여친과 처음 가는 여행인데 좋은 곳으로 가라며 손수 호텔까지 예약해 주었단 이야기를 들었을 땐 좌절과 질투 나 자신에 대한 원망까지 합쳐져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헤어 나오지 못했다.
한참의 번민 끝에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정신줄을 한데 부여잡으며 결국 나는 흰 손수건을 내던질 수밖에 없었다. 나를 믿고 힘들게 건넸을 그녀의 진심을 내칠 명분을 그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둘만의 여행을 떠났다.
이 소동의 최대 수혜자는 우리 둘째, 언니가 온몸 불살라 닦아놓은 길을 그저 스윽 지나가면 되니 말이다. 언제 그녀의 입에서 여행소리가 나올는지 맘을 다잡으며 살고 있는 요즘, 그럼에도 딸들의 연애가 아름답게 피어나길 바라고 또 바라본다.
훗날 이 도전장을 받을 여러분의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요?
냉탕과 온탕을 수백 번 들락거리실 여러분들께
노래 한곡 바칩니다.
사랑으로 가득찬 하루 보내세요.
https://youtu.be/l9pGE7HsTIQ?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