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빵은 이제 그만

새로움 한스푼 추가해 볼게요

by 마이라떼

나는 단골손님이다. 한번 정을 들인 곳은 여간해서는 바꾸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익숙함이나 편안함 또는 귀차니즘의 발로 그 정도일 것이다.


단골이 되면 좋은 점은 서로의 안부를 물을 관계가 많아짐으로 각박한 사회 속에 사람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단순한 거래 이상의 친밀한 감정이 생겨 혹여 실수가 생기더라도 상대방을 믿고 큰 웃음 한 번으로 넘길 수 있다. 마치 내가 아주 좋은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점은 나를 잘 알고 있어 특별히 애를 쓰지 않아도 원하는 결과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10여 년 넘게 다니고 있는 동네 내과가 있다. 번쩍번쩍 인테리어에 최신 의료시설은 없지만 증상만 말해도 나에게 딱 맞는 약을 처방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은 그야말로 나의 전용주치의시다. 아이들 안부에 요즘 스트레스받는 일은 없는지, 요즘 어떤 병이 유행이니 조심하라는 걱정까지 몸과 마음의 위로를 한꺼번에 받고 나오면 벌써 다 나은 거 같은 착각까지 들곤 한다.


동네 슈퍼 사장님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이 싸게 들어오면 잊지 않고 연락을 주시고, 분식집 아가씨는 한 줄 김밥을 주문해도 먹지 않는 깻잎을 빼주시는 센스를 보여주신다. 이런 사소한 행동들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참으로 크다.




그런데 문제는 내 삶의 대부분이 안정이라는 우산 속에 머물러있다는 사실이다. 가던 곳만 가고 먹던 것만 먹으며 심지어 옷도 늘 사던 곳에서 깔별로 산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자칫 길을 잃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어디 인생이란 게 내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간 적이 있었던가. 늘 변수가 있었고 예상치 못한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으며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당황하기 일쑤였다. 하여 내가 선택했던 건 일상을 유지하는 일. 나에게 실패란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꼭 피하고픈 낯선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안정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나의 머릿속은 늘 생각으로 쉴틈이 없다. 짧은 샤워를 하는 와중에도 따듯한 물의 온기나 향기로운 비누향을 느낄 새도 없이 나가서 할 일들을 순서대로 정리하고, 일정을 짤 때도 한치의 빈틈없이 테트리스처럼 맞아떨어지게끔 미리 조율한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아무것도 잃지는 않을 거라 여겼지만 이제야 나는 나의 삶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잃었을 지도 모름을 절실히 깨닫는다. 길을 잃으면 새로운 길의 즐거움을 느끼면 되는 것이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면 되는 것이었는데 무엇이 그렇게 나를 붙잡고 있었던 것인지.


매년 구입하는 꽃무늬 다이어리에요. 어김없이 올해도 샀답니다.




나의 삶에 새로움 한 스푼을 추가해보려 한다. 신데렐라 요정할머니의 비비디바비디부 주문에 맞춰 나를 변신시킬 차례. 대단한 변화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민초아이스크림에 도전해 볼 수도 있고, 평상시라면 절대 눈길도 주지 않을 꽃분홍 립스틱을 발라볼 수도 있을 것이며 나 홀로 노래방에서 열창을 해볼 수도 있겠지. 목적지는 같아도 낯선 길을 기꺼이 걸어가 보고 혼자서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일들을 시도하는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설레이고 기대된다.


저의 단골매장 사장님들께 드리는 작은 노래선물입니다.
당분간 저는 떠나가지만 다음에 또 만나요.

https://youtu.be/zZoHiPzJJZA?si=tuDqSlpQUi7FJN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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