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줌회의 들어가야 하는데 좀 봐줘. 진짜 오디오 꺼진 거 맞지?
딸~ 인스타 계정 하나 더 만들 수 있어? 블로그도..
딸~ 사진 좀 받아서 여기 붙여봐 주라
딸~ 오늘 몇 시쯤 시간 돼? 프린트가 안되더라구
하루에도 여러번 딸들을 부른다. 기분과 눈치를 살피고 미리 예약도 걸어둔다. 여러걸음 안 하시도록 궁금증을 미리 파악하여 한번에 해결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는다. 그녀들의 등장에 공손히 화답하는 처량한 내 신세. 대역전극의 시작이다.
소싯적 나는 공부를 잘하는 소위 모범생이었다. 당시의 학습이란 깜지로 대변되는 무한암기시스템이었는데 나는 그쪽에 재능이 있었던 셈이다. 저 하늘에 있다는 대학에 단번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당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정보통신회사에도 턱하니 합격하였으며 높은 토익점수 덕분에 사장실 비서실로 배치되기도 했었다. (당시 내 지인들은 키도 작은 내가 비서가 되었다는 소식에 너네 회사 진짜 실력만 보는구나라는 멘트를 날림으로서 의문의 일패를 당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지금의 인스타나 유튜브 못지않게 당시는 전화모뎀을 통한 PC통신, 천리안 나우누리가 인기였는데, (나의 영원한 오빠 한석규 주연의 접속이나 응답하라 1988에서 정봉과 미옥의 재회장면에 등장하는 바로 그 시스템이다.) 이 서비스의 구축에도 나의 열정과 땀 한 방울이 가미되어 있다. 결혼 후엔 인터넷 쇼핑몰도 운영했고 카카오톡의 시작과 동시에 대학친구들과의 단톡방 개설도 내가 했었는데 이 모든 것은 과거의 영광일지니 지금 나는 맹모, 맹한 엄마가 되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뱁새다리를 가진 나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은 숫자와 컴퓨터로 대변되는 경제와 IT분야이다. 그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철저한 문과형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구차하게 빠득빠득 우겨본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이 두 분야야말로 삶의 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쌍두마차가 아니겠는가.
유튜브를 보며 어찌저찌 주식계좌를 만들고 비상금 일부를 넣어놓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후속활동은 전무. 공교롭게 엔비디아 분할전날 만났던 대학선배언니는 내손을 부여잡으며 꼭 주식을 사라 했건만 이는 허공으로 흩어진 메아리가 되었고 며칠 후 다시 만난 언니의 안타까운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글쓰기를 하며 알게 된 새로운 친구 챗GPT도 마찬가지. 나도 안다며 자랑스레 얘기했건만 이미 그는 우리 아이들의 절친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였으며,
대면시스템에 특화된 나는 편리한 챗봇과의 채팅보다는 굳이 몇 단계의 수고로운 과정과 시간을 들여 상담사분과의 통화를 선택하고 은행업무도 창구직원분께 일대일 과외를 받기 위해 기꺼이 방문하는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비관만 한들 무엇하랴.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트렌드와 신기술들이 헨젤과 그레텔이 남긴 과자조각처럼 내 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다. 욕심내 다 줍다 보면 그 무게에 지쳐 포기할 수도 있으니 내 입맛에 맞는 것들로 골라 맛나게 먹으며 끝끝내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저 먼 달나라에 내 집 한 채 갖게 될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달리기 시합 때 기면증에 걸린 불쌍한 토끼와 겨뤄 승리한 거북이도 그저 뚜벅뚜벅 내 길을 걸어갔을 뿐인데 이겼다는 소감을 남겼을 터. 모르면 모르는 대로 불편하면 좀 불편한 대로 살아보면 좀 어때. 그것도 나의 삶인 것을.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느좋'이라는 말이 있다.
"느낌좋은"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 나도 오늘부터 느좋맘이 되어야지.
느낌도 좋지만 느려도 좋은 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