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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희 Nov 12. 2019

1999년 네 번째 만남  - 장국영과의 눈 인사

나의 레슬리 ep15 : 다섯 번의 만남, 한 번의 대화 (4-1)

인터넷이 처음 보편화되었을 무렵인 1998 년 말,

나는 자주 찾던 게시판에서 무심코 배너 하나를 누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무심한 클릭의 결과로 나는 장국영을 만나 그와 직접 대화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지나친 비약이지만 그 날 내가 눌렀던 배너는 ‘웹 DJ 선발대회’를 연다는 것이었다.

음악 장르 불문, 음악과 라디오를 사랑한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말에 당시 심취해있던 중국 음악을 소개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목소리가 예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기도 했었고, 말빨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원고를 준비해 읽는 것이라면 해봄직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접수 마감 전날 부랴부랴 필요한 자료들을 갖춰서 지원을 하면서도 설마 이게 되겠나 싶었는데, 남들이 말하는 것 그대로 ‘어쩌다 보니’ 한 달 뒤에 나는 녹음실에 앉아 녹음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렇게 멋들어진 녹음은 아니었다..


당시 나를 웹 DJ로 선발한 인터넷 방송국은 국내 최초의 포털(이라 한때 기록되었으나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인 ‘아이팝콘’이었고, 프로그램 제목은 <모니카의 짱께 마을>이었다.

지금이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부끄럽기까지 한 제목 이건만, 당시의 나는 왜인지 저런 치기 어린 표현을 쿨하다 여겼다. 아, 아무래도 그 당시의 나는 심각한 중2병 환자였던 모양이다. 훗날 이 이름을 두고 이불 킥을 하게 될 거라는 것은 상상조차 못 하고.


개인방송과 달리 회당 나름의 보수를 받는 DJ 였는데, 1999 년 1 월 말에 첫 방송을 시작해 중국 음악 팬들에게 꽤 괜찮은 반응을 얻었고 이듬해엔 ‘두밥’이라는 새로운 인터넷 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겨 <모니카의 차이나타운>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더랬다. 그러고 보니 짱께 마을이나, 차이나타운이나. 새삼 내가 이렇게나 창의력이 부족한 인간이었구나 싶다.



<짱께 마을>을 진행한 지 반년쯤 되었을 때, 장국영이 새 영화의 홍보를 위해 서울에 올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터넷 방송이지만 그래도 나름 방송을 진행하고 있으니, 인터뷰 요청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생각이 닿았다.

그리하여 그 날로 문제의 영화 <성월동화>의 수입사 전화번호를 수소문했다. 114에 문의를 한 끝에 수입사에 전화를 하니, 홍보와 관련한 모든 업무는 홍보대행사에 문의하라며 전화번호와 담당자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성함은 잊은 지 오래(죄송합니다). 남자 과장님이었던 것만 기억이 나는데, 그분은 첫 통화에서 인터넷 방송 진행자라는 나의 자기소개에 “인터넷 매체는 계획에 없다”고 무뚝뚝하게 답했었다. 애초에 인터뷰가 성사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건 전화가 아니었는데... 그 말에 묘하게 오기가 발동했다.



요즘 세상에 인터넷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팝콘이 뭔지 아느냐. 국내 최초의 포털이다, TV는 시간을 맞춰서 봐야 하지만 인터넷은 내가 원할 때는 언제든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내 방송은 중국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듣는데 이 영화를 홍보하기에는 훨씬 유리하지 않겠느냐...

그야말로 신들린 듯이 문제의 과장님을 설득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스물세 살의 꼬맹이가 했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깜찍하고 발칙한 멘트들이었다. 대체 그때 나는 뭘 안다고 저런 말들을 했던 걸까.


그런데 뒷걸음을 치다가 쥐를 잡긴 한 모양인지 과장님은 결국 생각해보겠다는 여지를 두며 전화를 끊었다. 뭔가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에 그 뒤로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과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내한과 개봉 날짜가 확정되었는지를 물어보곤 했다. 그리고 통화를 할 때마다 인터넷 방송의 장점들을 하나씩 복기시켜주었다. 장국영을 만나려면, 과장님이 나를 계속 기억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통화를 했을까.

여느 때처럼 점심시간을 넘긴 무료한 오후에 전화를 걸어 과장님의 안부를 물었더니, 과장님이 예의 무뚝뚝한 목소리로 엄청난 소식을 전해주었다.



내한 확정됐어요. 그리고 인터뷰 한자리 빼놓았고요”



네?

인터뷰를 빼놓았다고요?

저요?

제 인터뷰요?

진짜요?

정말이에요?



변죽 좋게 한자리 내어달라 집요하게 설득할 때는 언제고, 막상 인터뷰가 성사되었다고 하니 얼떨떨해하는 내가 재미있었는지 그 수많은 통화 내내 한 번도 웃지 않았던 과장님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인터뷰 일정은 열흘 뒤였다. 지금 같으면 열흘 뒤에 장국영을 만난다면 남은 시간 내내 식음을 전폐하고 굶어서 붓기 하나 없는 얼굴을 만들 테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그런 개념이 탑재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장국영을 만나기도 전에 샴페인을 터뜨리느라 매일 밤 술을 마셨다. 10 년 팬질의 결과로 그와 직접 인터뷰를 하게 된 나를 축하해주겠다는 사람은 왜 그렇게나 많았던지. 결국 나는 인터뷰 전날까지 술을 마시고, 당일 아침에 해장 삼아 순댓국까지 거하게 먹고서야 그를 만나러 갔다. (미쳤어!)



나는 이 날 신라호텔에도 처음 가봤다. 레슬리 덕분에 처음 가보게 된 장소 중 하나.


신라호텔의 그랜드볼룸. 불과 4 년 전 리츠칼튼 호텔의 기자회견장 앞에서 쫓겨나듯이 돌아 나와야 했던 나는, 이제 프레스라는 글자가 박힌 목걸이를 차고 기자회견장의 어엿한 일원이 되어있었다. 그 사실이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 없었다.


기자회견에 앞서 영화를 보고, 기자들을 위해 준비된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자 드디어 회견이 시작되었다.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은 나는 장국영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마이크를 쥐는지, 어떻게 물을 마시는지.. 세상 어이없는 질문(극 중에서 장국영이 흰색 팬티바람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한 기자가 그 팬티가 <아비정전>에서 입었던 것과 같은 팬티냐는 질문을 던졌다. 딱딱한 분위기를 깨기 위한 나름의 조크였던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짱께 마을> 보다 몇 술 더 뜬 무리수였다고 생각한다)에는 어떤 표정을 지으며 답하는지..


몇몇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고 사회자가 “다음 질문하실 분?”하며 기자석을 바라보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어버렸다. 사회자가 나를 질문자로 지목하고 마이크가 건네져왔다.

장국영이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보자, 갑자기 목이 잠기는 것 같았다.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내가 한 질문은 '<아비정전>의 팬티'만큼이나 생뚱맞은 것이었다.


“한국에서 상영금지되었던 <색정남녀>가 최근에 개봉 허가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네? <색정남녀>요? 저 부르셨나요?


당시에는 장국영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고른 질문이었지만, 나를 초대해준 <성월동화> 홍보팀과 특히 잦은 전화통화로 어느새 베프가 된 것 같은 과장님에게는 너무나 무례한 질문이었다. 변명하자면 난 당시에는 그것이 무례라는 것조차 몰랐던 핏덩이였다. (지금은 반성하고 있어요 과장님)


하지만 레슬리는 이 질문이 기뻤는지 꽤 길고 성의 있게 대답해주었다. 통역가가 그의 대답을 한국어로 풀어서 대답해주고 나자 장국영이 슬쩍 나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그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하며 눈인사를 했다. 그의 성의 있는 대답이 고마웠다. 그런데 더 고맙게도 그런 나를 보며 레슬리도 고개를 살짝 끄떡하며 눈인사를 해오는 것이 아닌가. 어, 그래 라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살다 보면 내 눈에 카메라가 달려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고이 간직해놨다가 삶이 팍팍해질 때면 다시 꺼내보고 싶은 소중한 순간들. 만약 정말로 눈에 카메라를 장착할 수 있다면 나는 단연코 이 순간을 가장 먼저 촬영해 백업해둘 것이다. 그리고 그 영상을 여기저기 퍼 나르며 사방에 자랑을 해댈 것이다.


“이것 보라고! 나 장국영이랑 눈인사 한 여자야!




장국영과 눈인사를 했다는 사실에 둥실둥실 취해 기자회견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몰랐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전화로만 인사했던 과장님이 홀연히 나타나 개별 인터뷰를 할 매체 담당자들을 챙겨 19 층 라운지로 올라갔다.

당초 홍보사 과장님은 광동어 통역을 제공해줄 수 있으니 필요하면 이야기하라고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굳이 제3 자를 통해 그와 대화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무슨 깡이었는지 “영어로 직접 인터뷰하겠다”라고 못 박았다.


그런데 막상 19 층에 올라가 보니 영어로 인터뷰를 하는 팀은 우리 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갑자기 미친 듯이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스태프들 사이에서 영어 인터뷰는 한 팀뿐이니 이 팀이 제일 먼저 하자, 맨 나중에 하자 열띤 순서 조정이 이뤄진 끝에 나는 결국 가장 마지막에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휴, 다행이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멀찌감치에서 그가 네 개의 매체와 차례로 인터뷰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때 내가 엄청나게 부러워했던 <성월동화>의 여주인공이었던 일본 여배우, 다카코 토키와


하지만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는 말은 진리였다. 인터뷰가 확정된 직후 질문지를 만들어서 그 내용을 외우고 또 외웠건만, 통역을 거쳐 매끄럽게 진행되는 인터뷰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점점 머릿속이 곤죽이 되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아, 첫 번째 질문이 뭐였더라... 그다음엔 뭐라고 물어보려고 했었지... 레슬리가 전혀 예상 밖의 대답을 하면 어쩌지... 생각이 엉키는 만큼 점점 등이 축축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점점 긴장하는 내 상태를 눈치채지 못한 듯 촬영을 준비하는 프로듀서는 시종일관 신이 나서 죽겠는 얼굴이었다. 나와 함께 19 층으로 올라간 선희언니도 가까이에서 장국영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즐거운 눈치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 아무래도 이 넓은 라운지에 있는 사람들 중 내 머릿속만 뒤죽박죽인 모양이었다.


머릿속으로 질문을 반복 또 반복하는데 광동어로 진행된 마지막 인터뷰가 끝났다.

스태프에게 다음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된다는 설명을 들었는지, 장국영은 소파에 자리를 꼬고 앉아 물을 마시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자, 다음 타자가 누구니? 얼른 나와보렴 하는 표정을 짓고서.

그 표정을 본 순간, 나는 갑자기 접신을 한 것 마냥 긴장도 걱정도 다 잊고 사람들을 헤치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 장국영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는 수백수천 번 연습한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모니카의 짱께 마을>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니카예요.

원래는 인터넷 라디오 프로그램이지만 오늘 인터뷰는 특별히 비디오 클립으로 제작할 거예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리고 나는 척 하고 내 손을 내밀며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레슬리는 씩 웃으며 내 손을 맞잡고는 물어왔다.



하이, 반가워 모니카. 그런데 너 내 팬이구나?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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