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9년의 장국영

나의 레슬리 ep21 : 장국영과 함께 걸어온 시간들 (3)

by 장지희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홍콩스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 주인공은 누구일까.

아마, 장국영이 아닐까.


한국에 수년간 거주했던 경험 덕분에 한국어를 꽤 잘하는 성룡,

광고에서 “사랑해요 밀키스”를 외쳤던 주윤발,

마찬가지로 광고 속에서 대학생 시절의 이영애와 풋풋한 러브스토리를 펼쳤던 유덕화,

한국 드라마 주제곡까지 부른 여명,

은퇴한 지금도 이따금씩 한국의 연예뉴스에 등장하는 임청하...


수많은 홍콩 출신 스타들이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80년대부터 2020년 현재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은 장국영뿐인 것 같다. 물론 여기에는 내 사심이 백만 퍼센트 섞여있다는 것도 알고,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거기엔 그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 지대하게 작용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내 지인 중에는 더러 이 의견에 반대의견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그러하다.



그리고 장국영이 이렇게 한국에서 사랑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1989년의 공이 가장 크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1989년 이전에도 그는 한국과 여러 번 인연이 닿았었다.

한국은 의외로 장국영과 꽤 연이 깊은 나라였다. 신인 시절 MBC에서 열린 국제가요제에 홍콩 대표로 참가하여 작곡상을 받은 바 있고, 그 이듬해에도 2 년 연속 참가한 바 있다.


옛날 옛적에는 mp3로, 요즘에는 유튜브로 돌아다니고 있는 MBC 서울국제가요제 당시의 영상을 들어보면 아나운서가 “엔트리 넘버 식스, 홍콩 대표 레슬리 충”이라고 그를 소개한다.

옛 서울 사투리가 섞인 아나운서의 말투만큼이나, <Thank you>를 <사랑의 찬가>로 둔갑시킨 올드한 번역체만큼이나, 레슬리 ‘충’이라는 발음은 생경하고 우습다.


https://www.youtube.com/watch?v=0rXdH8To9zs

1979년, 너무 오래된 영상이라 싱크가 잘 맞지 않는다. 그래도 '미스터 빠마' 레슬리의 미모는 확인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노래와 연기를 병행하는 만능의 연예인”이라고 소개된 우리 ‘레슬리 충’ 군의 노래는 어땠을까. 앗, 이 목소리는 데뷔 앨범의 그 소년 티를 채 벗지 못한 그것이다. 소년 같은 앳된 얼굴과 목소리로 70 년대의 한국을 찾았던 그가 레슬리 충이 아닌 레슬리 청이라고 제대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자그마치 10년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1989년, 진짜 게임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앳된 소년 레슬리 충은 홍콩의 슈퍼스타 장국영이 되어 한국에 돌아왔다. 그것도 앞서 두 번이나 다녀갔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MBC의 브라운관을 통해서. 지금도 해외 각지에 짤방과 비디오 클립이 돌아다니고 있는 전설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무대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45jXlfuS0po

개인적으로 레슬리의 리즈시절이라고 생각하는 1989년.



이덕화의 "부탁해요"로 시작되는 <토토즐> 무대는 지금도 볼때마다 감탄하는 영상이다. 스탠드 마이크를 앞에 두고 <무심수면>을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이라니.

게다가 스탠드 마이크를 막 번쩍번쩍 들어.

뭔가 안무도 세련된 것만 같아.


그야말로 이전에 국내에서는 본 적이 없는 생경한 퍼포먼스였다.


당시 국민학교(초등학교가 아니다) 6 학년이었던 나는 <토토즐>이 방영된 다음 주 월요일 교실에서 펼쳐졌던 광경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장국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까불기 좋아하는 남자아이들은 교실 뒤쪽 벽에 세워둔 마대자루를 스탠드 마이크 삼아서 장국영이 췄던 춤을 흉내 냈다.


이와 유사한 기억은 서태지가 처음 등장했을 때 정도였던 것 같은데, 국민학생들이 이 정도였으니 성인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래도 굳이 설명하자면, 장국영의 노래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조차도 “쌈쏘이 쌈쏘이 하는 노래”라는 표현을 쓰며 이 날의 무대를 본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그것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여러모로 한국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무대임은 틀림이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뒤, TV에서 드디어 또 하나의 전설로 남은 '투유초콜릿'의 광고가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이별, 방황, 재회라는 총 세 편으로 나뉜 연작 광고였고, 스토리텔링의 방식을 취하면서도 뮤직비디오 뺨치는 감각적인 영상은 금세 화제를 낳았다.

'투유초콜릿' 광고는 아시다시피 30년 전에 전파를 탄 광고다. 덕분에 내가 이 광고를 TV에서 실시간으로 보았다는 사실을 신기해하는 분들이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지금 보아도 딱히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세련되었다. 그러니 이걸 30년 전에 보았을 땐 얼마나 쇼킹했겠는가.


또 요즘에야 드라마타이즈 형식의 광고도 뮤직비디오도 흔하지만, 당시에는 처음 보는 파격적인 형식이었다. 당시의 광고는 효과와 효능을 자세히 설명하는 식의 정직한 광고가 많았는데, 이렇게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제품을 녹여낸 광고는 처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게다가 연작 광고이다 보니 한편씩 공개될 때마다 온갖 소문과 화제가 만발하기도 했다.

2 편의 말미에 등장하는 택시녀의 정체를 두고 돌았던 소문이 대표적인데, 긴 생머리의 뒷모습을 두고 세간에는 “이미연이다”, “아니다”하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연은 투유초콜렛의 경쟁제품인 가나초콜렛의 모델이었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추측이었지만, 그때는 왜인지 다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홍콩스타의 상대역을 하려면 그 정도 급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둘 다 선남선녀라 아주 잘 어울릴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그럴 수도 있겠다’보다는 ‘그랬으면 좋겠다’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장국영의 그녀’는 이미연도 그 누구도 아닌 그림자였다.

그랬더니 그다음엔 이 그림자의 정체가 누구인지를 놓고 추측이 난무했다. 그중 그림자의 머리 모양이 짧은 커트머리인 것으로 모아 모델 박영선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대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P9BOsItHApk

어릴 때 나는 광고 속 가사 자막이 찐인 줄 알았다. 1년쯤 지나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는 걸 알고 얼마나 배신감이 들었던지.. (나의 생명까지도 바치고 싶은 투유라니요 ㅋㅋ)


그런데 광고의 클라이맥스이자 엔딩인 3편이 공개될 즈음 국내에 장국영의 은퇴 소식이 전해졌다.

뭐라고요? 난 이제 막 팬심이 피어나기 시작했는데 은퇴라니요...

13살 인생 중, 산타클로스가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청천벽력 이래 가장 억장이 무너지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나처럼 허탈한 얼굴을 하고 앉아있었을 팬들을 대상으로 투유초콜릿 측은 대대적인 이벤트를 열었다. 첫사랑에 대한 사연을 적어서 보내면 추첨을 통해 장국영의 은퇴콘서트에 보내준다는 역대급 이벤트였다.


이벤트 소식이 알려지자, 당시 동네 고등학생 언니들이 들썩들썩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있어 보이고 가슴 아픈 첫사랑 스토리를 짜느라 고생들을 하고 있다는 '국딩'인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

하지만 첫사랑을 논하기엔 너무 어렸기에 거짓 명함조차 내밀어볼 수 없었던 나는 십 수 명의 ‘언니’들이 당첨되어 홍콩 콘서트에 다녀오고 장국영과 따로 기념사진 찍는 등 말 그대로 ‘계를 탄’ 후기를 잡지 기사로 읽으며 눈물 나게 부러워했다.

나도 고등학생 정도만 되었으면 멋들어진 첫사랑 ‘소설’을 써내서 저기에 함께 갈 수 있었을 텐데. 내 일생을 통틀어서 늦게 태어난 게 그렇게 분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콘서트의 실황이 비디오테이프로 발매된 후에는 그 분함이 더욱 배가되었다. 무대 위의 장국영이 멋있기도 멋있었지만, 공연의 오프닝 곡 중의 하나가 바로 그 투유초콜릿 광고 주제가의 원곡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저 노래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니! 나는 이 노래를 듣자마자 방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억울해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원통 절통해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내내 투유초콜릿을 까먹고 있던 때였다. 어쩌면 내 기나긴 다이어트 인생의 시작은, 투유초콜릿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은 사이즈가 한 개에 200원, 큰 사이즈가 한 개에 500원 했던 투유초콜릿을 사느라 또래 치고는 꽤 넉넉히 받았던 용돈을 탕진했던 시절이니 말이다.




그랬다. 1989년은 그런 해였다.

TV를 틀면 장국영이 출연하는 광고가 무심하게 흘러나오고, 친구들 사이에서 장국영과 관련된 농담이 유행하고, 그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한 아이들이 등장하고, 거리를 걸으면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리어카에서 To You가 흘러나오고, 그리하여 장국영을 좋아하는 것이 가장 트렌디한 일이었던 때.

그리하여 가지고 있는 음반이라고는 달랑 테이프 두 개였고, 제대로 본 영화는 손에 꼽을 지경이었고, 소위 말하는 자료 따위 뭔지도 몰랐지만.. 그럼에도 아마도 가장 즐겁게 팬질했던 때였던 것 같다.


그래서 아주 가끔은, 돌아가고 싶은 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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