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의 레슬리 ep8 : 잊지 못할, 그날 밤 (2)

by 장지희

유명인들은 세상을 뜨고 나면 살아생전의 몇 곱절이 넘도록 뜨겁게 회자된다. 그리고 그 뒤에는 거짓말처럼 잊혔다가 세상을 떠난 그 날이 돌아오면 몇 주기가 되었다는 소식 정도로만 소소하게 다시 기억된다. 마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철 지난 폭죽처럼.


장국영 역시 비슷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에는 마치 광풍이라도 불어닥친 것 같았다. 오래도록 홍콩영화 ‘따위’, 홍콩 음악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그의 영화와 음악에 대해 열렬하게 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소란이 금세 끝날 것을 알았기에 나는 그 기간 내내 야단법석을 떠는 사람들을 무심하게 보았던 것 같다.

왜 이제 와서 그런데, 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관도 않더니, 흥!


역시나 예상대로 광풍이 몰아닥친 기간은 그닥 길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느새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주제로 관심사를 옮겨갔다. 그리고 십 수 번의 주기를 거쳐 그는 이제 8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잘 모르는, 그야말로 추억의 인물이 되어버렸다.



다양한 연령대의 꽤 많은 인원을 관리하는 자리로 이직을 한 후에 팀원들과 가진 첫 회식에서 느꼈던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나는 술잔을 들고 여러 테이블을 순회했는데 마지막으로 자리를 잡은 곳은 90년대 중반에 태어난 막내들이 앉은 테이블이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고등학생들처럼 까르르 웃음이 떠나지 않는 테이블에서 각자의 취미와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늘 그렇듯이 장국영을 좋아한다는 말을 꺼내니 이 친구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친다.

그 얼굴에 덩달아 나도 함께 당황하여,


“혹시.. 장국영을 모르니?”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다 같이 미안한 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맙소사, 결국은 이런 날을 맞이하는구나. 장국영이 불렀던 <영웅본색>의 주제가는 여전히 국내 예능에서 열심히 쓰이고 있건만, 정작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시절이었던 것이다. 하긴 뭐 나는 안 그랬나. 저 친구들의 눈에 비친 나는 내가 사회초년생 때 보았던 이름 모를 배우나 가수를 좋아한다고 (쓰잘데기 없이 아련한 눈빛으로) 말하는 부장님과 다를 바가 없겠다 싶었다.


장국영을 모른다고 하던 그 친구들은 ‘듀스’도 노래만 어렴풋이 알 뿐이라고 했고(그것도 리메이크곡 덕분에), 심은하도 이름은 알지만 정확히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설명을 듣다 보니 내가 어릴 때 어른들에게 배우 정윤희에 생각했던 바와 매우 비슷했다.

심지어 설마 서태지까지 모르는 건 아니지? 하는 질문에는 “아빠 차에서 들어봤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오. 마이. 갓.


하지만 진짜 웃픈 것은 내가 어느덧 나이를 먹어서 이런 상황을 맞이했다는 사실보다, 저 꼬맹이들이 장국영을 모른다는 것에 더 속상해했다는 사실이다.

아, 이 물색없는 팬심이라니.


bench-2525080_1280.jpg 텅 빈 광장에 나 혼자 남은 기분.. [출처 : Pixabay]


세상이 살뜰하게 기억하지 않는 사람의 팬으로 산다는 것은 참 쓸쓸한 일이다. 안 그래도 쓸쓸한데, 이렇게 장국영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니 더욱더 쓸쓸해졌다.

뭐랄까, 마치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던 광장에 밤늦은 시간까지 홀로 외롭게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레슬리라는 광장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서 반짝 붐비는가 싶더니 이내 예전보다 더 쓸쓸해져 버린 차인데 말이다.


30년이라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광장을 지키고 섰던 나는 레슬리 본인이, 그리고 다른 연예인들이 느꼈을 덧없음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자신의 이름을 건 광장이라는 곳을 처음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을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 넓은 공간이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만큼 여러 번 채워졌다가 다시 텅 비어진 것이었을게다. 그렇게 반복해서 채워지고 비어지는 자신의 광장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떠할까.

세상이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 과정을 객관적이고 담백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레슬리가 세상을 떠나고 스스로 멀쩡하다고 생각하던 그 시기의 내 머릿속을 채운 것은 ‘왜’라는 끝없는 의문이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답을 안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알면서도 나는 그 질문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하룻밤에도 여러 개의 가설이 세워지고 무너졌다. 그리고 모든 가설은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참 가슴 아팠다. 그래서 모든 결론은 늘 같았다. 아, 레슬리. 불쌍한 나의 레슬리.


그때처럼 매일매일 숙제하듯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따금씩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곤 한다. 이런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저 그 마음을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이랄까.

세상은 지금도 그의 죽음에 의심 섞인 시선을 보내고, 간혹은 나 또한 무엇이 진실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늘 같다.


진실은 나도 모른다. 하지만 바라건대, 이유가 무엇이었든 그 스스로가 내린 선택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세상 사람들이 상상하듯 누군가에게 떠밀려 맞이한 끝맺음이기보다는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이길 바라면서도 ‘왜’라는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아이러니라니.

사실 나도 이런 내가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이해해보려는 노력조차도 멈춘 지 오래다. 그저 지금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단 하나다. 더 이상 장국영의 몇 주기라는 소식 한 줄 들리지 않을 미래의 어느 날을 맞이하는 것.

그 날이 가능한 늦게 찾아오기를 오늘도 바라본다.



어제, 한 여름의 복숭아처럼 하얗고 반짝거리던 여자 연예인이 세상을 떠났다. 세상의 얄궂은 시선 따위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거침없이 표현했던 그녀를 기억하기에, 그 소식은 더더욱 놀라웠고 믿기지 않았다.

일터에서 일과를 마칠 무렵 주변에서 수근수근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검색하면서 나는 조건반사처럼 레슬리가 떠나던 그 밤을 떠올렸다.


아, 그녀를 사랑하던 사람에게는 오늘 밤이 내가 16년 전 보냈던 것과 같은 그 밤으로 남겠구나. 그리고 그들 역시 그간 내가 했던 생각과 고민들을 떠안게 되겠지. 그들도 떠들썩했다가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간 텅 빈 광장을 목도하게 되겠구나.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주제 넘은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바라건대, 그녀를 아꼈던 사람들이 너무 깊게 상처 받지 않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편안히 쉬기를.. 마음 속 깊이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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