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7월, 장국영과의 인터뷰

나의 레슬리 ep27 : 다섯 번의 만남, 한 번의 대화 (4-3)

by 장지희

지난해 마지막 날, 나는 한 해를 마감하며 에버노트 안에서 나만의 시상식을 열었다.

누군가가 한 해를 정리하는 방식이라는 글을 읽고, 그것을 가져와서 내 식대로 바꾼 이른 바 <2019 장마담 어워드>. 한 해 동안 만난 사람과 사건, 생각들을 "올해의 OO"으로 부문별로 정리해 1등을 가려본 것이었다.


며칠 전 백업해둔 자료를 찾으려고 에버노트를 뒤지다가 이 노트를 다시 꺼내보게 되었다. 고작 한달 남짓 지났을 뿐인데도 새롭게 느껴지는 각 부문별 수상자 목록을 훑어보며 혼자 키득거리다가, 문득 먼 훗날 평생을 놓고 이 리스트를 다시 정리한다면 어떻게 결과가 달라질까 상상해보았다. 그리곤 "올해의 만남" 1등을 보면서 "평생 최고의 만남"은 누구일까 생각해보니 답은 뭐 정해져있었다.

(누구긴 누구겠어, 장국영이겄지)


그런데 레슬리와의 만남이 <장마담 어워드> 평생 1등으로 확실시되는 것과 달리, 그 내용을 담은 인터뷰 영상은 솔직히 다시 꺼내보기가 어렵다. 20여년만에 파일로 복원해서 들여다 본 영상은 부끄럽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나름 잘 해냈다고 착각했던 것과 달리, 세월이 흘러 다시 본 나는 참 미숙하기 짝이 없는 인터뷰어였다. 그가 무슨 농담을 던지든 뻣뻣하게 굳어서 정해진 질문만 던지는 모습이라니. 게다가 리액션은 또 왜 저 모양이람. 로보트인줄. (심지어 귀엽다는 말을 해주었는데도 그저 "오, 땡큐~"하고는 바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아, 이 난데없는 단호박스러움이라니. 마음은 절대로 그렇지 않았는데 대체 왜 그랬을까.. 지금이라면 엄청난 리액션을 날릴 수 있을텐데!)


게다가 테이프가 훼손되어 중간에 뚝뚝 끊기는 영상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안좋아진다. 나는 이 짧은 영상 하나 제대로 백업해두지 않고 무얼했나 하는 뒤늦은 후회가 들어 재생을 했다가도 얼마 보지 못하고 정지 버튼을 누르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장마담 어워드> 평생 1등으로 남을 사건인데, 싶은 마음에 부끄럽고 후회되는 마음을 접어두고 오랜만에 영상을 돌려보았다.

그런데 다시 보고나니 새삼 레슬리에게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스물세살 짜리가 뭘 안다고 저런 질문을 했나 싶은 질문에도 성실히 답해주고, 뻣뻣한 인터뷰어 앞에서도 시종일관 유쾌하고 유머러스했던 나의 레슬리에게.


그래서 오늘은 그와의 인터뷰 전문을 정리해보았다.

처음엔 그가 하는 말을 영어 원문으로 다 옮기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나, 영상이 중간중간 끊기는지라 부득이하게 우리 말로만 옮겼다. 물론 배정받은 인터뷰 시간 자체가 길지 않았기에 질문도 엉성하고, 훼손된 영상을 이어붙인 파일에서 발췌한 것이라 한국어로도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감독하게 될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나 팬들에 대한 생각, 그리고 당시 준비하던 새 앨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비록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한국 팬들과 다시 만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가 있길 바란다"는 그의 진심이 담긴 인사도.



마이크 켜는 것을 깜빡했던 Take1. 레슬리는 인터뷰에서도 본인 때문에 모니카라는 이름을 쓰는거냐고 '재차' 물었고, 오랜 팬이었다는 내 대답에 저렇게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하이 레슬리, 다시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이, 모니카.



<모니카의 짱께마을>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해주시겠습니까?

Hi, 모니카의 짱께마을! How are you?



감사합니다. 이번 내한은 이전 방문과 어떻게 다른가요?

한국 팬과 함께 하는 것은 언제나 해피합니다. “해피투게더”이죠. (웃음)

이번에 방문한 것은 저의 새 영화를 한국에 론칭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미 몇몇 팬들이 이 작품 <성월동화>를 보신 것을 알고 있지만, 이번이 한국 팬들을 위한 첫 정식공개입니다. 이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성월동화>는 외국인 여배우와 함께 작업한 첫 작품입니다. 다카코 토키와와의 작업은 어떠셨는지요?

네, 그녀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에요. 물론 아주 초반에는 우리가 같은 언어를 쓰지 않기 때문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야겠네요. 그녀는 일본어를 쓰고, 저는 광동어를 쓰니까요.

하지만 그녀는 무척 빨리 배우는 사람이었고, 영화 속에서 중국어와 광동어를 해야 했었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씩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또 그녀가 영어를 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촬영이나 그 밖의 상황에서도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었죠. 그리고 그녀는 굉장히 좋은 사람이고, 함께 일하기 좋은 영리한 사람이에요. 덕분에 우리는 매우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영화 <성월동화>에서의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저는 이 작품에서 두 개의 역할을 연기합니다. 하나는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본 남자이고, 다른 하나는 홍콩의 비밀요원이자 이 영화의 메인 캐릭터입니다. 일본인 남자의 약혼녀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약혼자가 남긴 다이어리를 찾아내고, 그 속에 남긴 기록을 찾아 홍콩으로 옵니다. 그리고 그녀는 홍콩에서 형사로 일하는 홍콩남자와 만나게 되고, 말하자면 그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죠. 그리고 그들은 여러 일들을 함께 겪으며 연인이 됩니다. 굉장히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위챗의 你我当年 앱으로 복원해낸 그 날의 레슬리.. 고대유물 같던 화질이 한~결 나아졌다. 백도어고 나발이고.. 최고시다.. ㅜ



영화 감독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영화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가요?

아직은 할 말이 없어요 (I'm nothing to say, YET!). 왜냐면 제 운명은 아직 제 시나리오 작가의 손에 달려있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사실 저는 세상이 최근 몇년간 매우 비참한 시기를 보내왔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모든 것이 전부 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였죠. 경제나 아시아 시장, 수많은 오염물질로 인한 환경문제도 그렇고요. 그래서 저는 “우리 좀 더 감동적이고, 매우 로맨틱한 걸 해볼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러브스토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팬들을 위한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제 팬 뿐만이 아니라 좋은 로맨틱 무비를 사랑하는 팬들에게도요. 그래서 시나리오 작가에게 “우리 굉장히 로맨틱한 러브스토리를 할 수 있을까?”하고 물었고, 그가 “예스”라고 답해서 곧장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재미있고 로맨틱한 영화가 될 것입니다. 기다리면 곧 볼 수 있을 거예요.



혹시 영화에서 뚱뚱하고 못생긴 소녀가 필요하다면 저에게 연락하세요.

그렇게 말하지 마! 내 생각에 너는 귀여워. (Don’t say that! I think you’re cute.)



(헉) 감사합니다. (광속으로 다시 정신 차리고) 당신에게는 수많은 여성팬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여성팬들을 ‘미치게 만든’ 비결은 무엇인가요?

비결 같은 건 없어요 (I don’t have any secret). 사실 여성 팬 뿐만 아니라, 제 팬들은 모두 제가 진심을 다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가수와 퍼포머로서 오랜 시간 동안 제 커리어 하나하나에 진심을 다해왔습니다. 그리고 팬들은 제가 엄청나게 재능이 있다는 것도 알고있죠 (찡긋 / 웃음)

이것이 여러분들이 저를 사랑해주는 이유라고 생각하고, 무척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도 계속 많은 영화와 음악을 만들어나갈 생각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오, 앞으로의 제 계획이요? 돌아가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새 앨범을 위한 녹음입니다. 그리고 이 앨범은 저의 프로덕션 하우스에서 만드는 첫번째 앨범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좀 떨리기는 해요. (웃음) 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조금 긴장되지만, 굉장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것은 제 오랜 꿈이었고, 그 꿈이 이뤄진 셈이지요.

그리고 당신에게 좀전에 이야기했듯이 시나리오 작가가 제가 감독할 영화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곧 작업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큰 이벤트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해주세요.

아이팝콘, 그리고 특별히 모니카를 위해! (For the ipopcorn, and especially for Monica!)

만나서 반가웠고 앞으로 다시 만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Okay? Bye!



시종일관 유쾌했던 그 날의 레슬리



이 인터뷰를 다시 정리하며

나는 새삼 그가 떠나지 않았다면 만들어냈을 '장국영 감독'의 작품이 궁금해졌다.

러브스토리로 점점 험해지는 세상에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었을 그의 마음이 잘 담긴

참 좋은 영화가 되었을텐데.. 하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마음 속에는

기다리면 곧 그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이라던 그의 말이 계속 맴돌고 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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