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지원이에게

노들섬에서 만나요 : 3월의 글세

by 장지희

사랑하는 나의 조카, 장지원.


네가 집에 다녀간 어느 밤, 문득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

네가 언제쯤 이 글을 이해할 수 있을지는 고모도 잘 모르겠지만 말야.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너의 이름은 ‘뚜또’였어. 이탈리아어로 ‘Everything’이라는 뜻이라고 해. ‘뚜또’라는 이름으로 네 존재를 처음 알게 된 날부터 지금까지, 너에 대한 고모의 가장 큰 마음은 ‘궁금함’ 일지도 모르겠다.

태어나기 전에는 네가 어떻게 생긴 아이일까, 누구를 더 닮았을까 궁금했었어. 태어나고 난 후에는 목소리는 어떨까, 성격은 어떨까, 식성은 또 엄마와 아빠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진지하게 생각하곤 했어. 요새는 ‘얘가 도대체 커서 무엇이 될까’를 제일 궁금해하고 있고. 첫 조카라는 존재가 이렇게 예쁘고 소중할 줄 고모는 미처 몰랐어.


그런데, 사실 고모는 한편으론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주 굳게 다짐한 것이 하나 있었어. 남들 다 하는 조카바보 같은 것은 되지 않겠다는 것이었지. 나는 세상에서 가장 쿨하고 산뜻한 고모가 되겠다고.

그런데 네가 태어나던 그 날, 그 결심은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버리고 말았지. 오후 내내 이어지던 긴 회의를 마친 후에야 열어본 카카오톡에서 네 사진을 처음 보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던 것 같아.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대고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신생아답지 않은 너의 첫 얼굴이라니. 아마도 고모는 그 순간에 곧장 너의 바보가 되어버린 것 같아.

어찌 보면 어릴 때 내 얼굴인가, 네 아빠의 얼굴인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얼굴인데, 이 얼굴을 대체 어디서 보았길래 이렇게도 낯이 익은 건가.. 처음 보는 네 얼굴이 너무나도 낯익고 예뻐서 몇 날 며칠 그 사진을 보고 또 들여다보았던 것을 아마 너는 모르겠지.



사실 고모는, 간혹 너에게서 어릴 적 내 모습을 보곤 해. 네 아빠의 여자 버전이 고모이고, 고모의 남자 버전이 네 아빠이니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을 거야.

덕분에 가끔씩 네 얼굴 위로 어린 시절의 내 얼굴이 설핏 스쳐가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네 살 터울의 동생 덕에 졸지에 첫째 딸이라는 상황을 겪어나가게 된 너를 보고 있으면 꼭 그 옛날의 나를 보는 것 같아.


네 아빠는 고모가 아홉 살이 되던 해에 태어났어. 그래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강보에 싸인 네 아빠를 소중히 데려오던 날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 나. 고모는 그 날 이 집에서 내가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버렸거든.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저 알아버렸어.

그래서였을까.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엄마 아빠가 아기만 본다며 울먹거리던 너를 보던 날, 고모는 꼭 과거에서 걸어 나온 나를 보는 것 같았어. 그 뒤에도 엄마 아빠의 사랑을 나누어 가져야 하는 것을 서운하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네 모습에서도, 동생이 샘나지만 그걸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마음속에 꾹 담아두는 너의 모습에서도 고모의 모습을 찾게 되더라.



그리고 그렇게 지원이와 고모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해보다 보니, 어느 날에는 자연히 고모의 고모들도 떠올려보게 되었어. 지원이가 늘 말하듯이 고모는 아빠의 누나야. 그리고 고모의 고모는 하늘나라 할아버지의 여동생들이야. 하늘나라 할아버지에게는 여동생이 세 명이나 있었거든.

지금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왕래를 하지 않지만 고모도 어릴 때는 고모들을 자주 만났었어. 지금 지원이랑 고모가 만나듯이. 또 막내 고모 하고는 결혼 전까지 같이 살기도 했었고.


막내 고모는 데이트를 나갈 때면 어린 나를 한껏 치장시킨 후에 데리고 나가곤 했대. 사실 난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래서 막내 고모가 결혼하던 날 식장에서 펑펑 울어서 덩달아 고모까지 울려버렸지.

그리고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막내 고모는 내가 주었던 결혼선물을 아주 살뜰히 챙겼다고 해. 그저 직접 그린 그림일 뿐이었는데, 결혼 10년 넘는 동안 몇 번씩 이사를 하면서도 매번 그 그림을 챙겼다고 해. 하지만 정작 막내 고모는 나에게 그런 내색을 잘하지 않았어. 나는 고모네 집에 갈 때마다 그 그림을 찾아보곤 했는데. 첫 신혼집 이후부터는 볼 수가 없어서 늘 서운했는데 말이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켜켜이 쌓였던 서운함조차 다 사라져 버린 뒤였어.


둘째 고모는 나를 만날 때마다 피부가 어쩜 그렇게 좋으냐며 장난을 걸곤 했어. 그리고 늘 그 끝에는 “고모 피부랑 바꾸자”는 말을 했었어. 그때는 그 말에 고개를 끄떡이면 진짜로 고모가 내 피부를 벗겨가 버릴까 봐서 그게 그렇게 무섭고 싫었는데.

근데 지원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니 그 짓궂은 표현은 결국 “예쁘다”는 말이었고, 애정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아주 나중에야 알았어.


알고 보니 나는 고모들이 무척 아끼는 조카였지만 정작 난 그 사실을 잘 몰랐던 거야. 어린아이가 이해하기에 그분들의 표현방식은 너무 어려웠거든. 그래서 고모는, 지원이에게 고모의 마음을 잘 표현하려고 해. 그래서 지원이가 헷갈리거나 오해하지 않고 정확하게 고모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고모가 지원이와 열심히 소꿉장난을 하고, 호텔 놀이를 하고, 왕관을 만들고, 색칠공부를 하고, 치타치타 춤을 추고, 키즈카페에 가서 함께 노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고모는 너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고 싶거든.

물론 너와 이렇게 몸으로 놀아줄 수 있는 날이 생각보다 길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아. 또래 친구들이 점점 더 소중해질 거고, 고모와 하는 놀이들이 언젠가 대단히 시시해질 날도 오게 되겠지. 하지만 지원이가 훌쩍 자란 후에도, 그래서 더 이상 고모랑 지금처럼 친하지 않더라도, 고모가 지원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기억해준다면 참 좋겠어.



3월 26일은 네가 우리에게 온 지 꼭 다섯 해가 되는 날이야.

네가 있어서 고모는 늘 기쁘고 감사해.

앞으로도 우리 친하게 지내자.


생일 축하해, My birthday girl.



2020년 3월,

고모가




덧붙이는 글

코로나로 인하여 노들서가는 3월 23일까지 휴관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3월 중에 노들서가에 정말로 전시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코로나가 하루빨리 종결되기를 바라며 브런치에 먼저 공개합니다.

- 조카 바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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