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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의 성장일기 Oct 13. 2024

상사의 기분을 거스르고 운동회를 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엄마가 꼭 갈게 

초등학교의 운동회 시즌이다. 한 번에 다 했으면 좋겠는데, 학년별로 나누어서 하니 이틀을 빼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연히 나에게 할당된 휴가를 쓰는데 조바심을 내고 싫은 소리를 들었다. 사회 초년생이었으면, 아마 아이 둘 중 한 명의 운동회는 포기했을 거다. 아마 일 학년인 둘째보다는 고학년인 첫째의 운동회는 빠졌을 것 같다. 하지만, '엄마 회사 일이 바쁘면 안 와도 돼'라고 말하는 첫째의 얼굴을 보니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과 후 발표회도, 참관수업도 아무것도 못 가줬는데, 올해 마지막 이벤트가 될 운동회를 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참으로 회사에 충성하는 직원이었다. 첫째 임신 4개월인가 때 택시를 타고 가다가 뒤에서 다른 차가 박았다. 지금 같으면 회사에 전화를 하고, 병가를 내고, 며칠 쉬었을 거다. 그때 나는 사고 난 택시에서 내려서 다른 택시를 타고 7시 20분까지 회사에 갔다. 내 몸보다는, 매일 아침 모닝미팅 시간인 7시 30분에 늦는 게 나는 더 걱정이었다. 나는 그렇게 아주 미련한 직원이었다. 


아이를 낳고 보니 과거처럼 미련할 수는 없었다. 내가 미련해서 회사에 남아있는 시간은 아이들이 엄마와 있는 시간을 점점 줄어들게 만들었다. 오히려 아기 때보다, 좀 더 크고 대화 상대가 필요한 나이가 되면서 그 시간들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외국계 증권사는 그런 면에서 적응이 되면 될수록 좋은 회사였다. 재택이 있었고,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의 특성상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족을 중요시하는, 와이프와의 10년 결혼기념일 때문에 칼퇴를 하는 보스가 있었다. 


지금은 그 반대의 보스가 있다. 내가 의문인 것은 출산율을 늘려야 한다는 나라의 공기업의 매니지먼트가 유연 근무에 대해서 매우 꽉 막힌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워킹맘에게 할당된 휴가를 쓰는 것도 싫어하고, 재택은 아예 없고, 유연근무를 쓰는 것도 싫어해서 쓰는 날짜들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출산 휴가는 놀다 오는 것이고, 육아휴직은 월급을 받는 직원이 어떻게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느냐고 한다. C-level에서 싫어하기에 HR이나 관리자급에서 이 제도를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그냥 내 권리는 다 쓰기로 했다. 그렇다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이래 봬도 경력이 15년이 넘고, 단 한 번도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적은 없다. 그리고, 출산율을 늘리는 것은, 단지 아이들만 낳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 엄마와 대화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아이들에게, 엄마의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하는 상황이면 - 그것도 공기업에서 - 도대체 나라에서 무슨 제도를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나의 아이들을 위해서 워킹맘으로서의 나의 권리를 다 쓰려고 한다. 그래서, 보스에게 싫은 소리를 들더라도 운동회를 가려고 한다. 그 싫은 소리와 찌푸린 얼굴보다, 엄마가 와주기에 환한 얼굴을 하는 아이들이 훨씬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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