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가장 저렴한 옵션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삶이 되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돈을 쓰는 것을 두려워한다. 보수적인 성격으로 미래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더해져서, 검소하신 건지 그냥 외모에 관심이 없으신 건지 모르겠는 아버지를 닮아서 당최 옷이나 액세서리 혹은 집안 꾸미기 등에 전혀 관심이 없다. 얼마 전에 친정을 갔다가 다 해진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걸 보고 아버지가 나이 마흔 인 딸에게 신발을 사주셨고, 엄마는 보풀이 나는 내 속옷을 버려버렸다.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부분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돈도 썼었으면서, 나에게 쓰는 돈에는 정말 참으로 인색하다. 입는 것, 먹는 것 대부분 나에게는 정말 최소한의 돈만 쓰면서 살았다. 시아버님이 퇴직하시기 전에 대놓고 '우리 회사 여직원들은 참 잘 차려입고 다니던데...'말씀을 하실 정도로 그냥 대충 입고 대충 먹고 신경 안 쓰고 살았다. 결혼 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이를 낳고 비용이 더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 내가 부재중인 아이들의 시간을 돈으로 사기 시작하면서 - 나에 대한 투자는 정말 최소한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참, 마음이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대충 입고 선크림만 바르고 다니는 나를 보는 시선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으나,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않고 - 나에게는 정말 최소한의 투자만 하면서 - 회사와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 나날들이 왠지 서글프기도 했던 것 같다.
얼마 전에 업무로 인해서 비 연고지에서 묶어야 했고, 하루는 청구가 되지 않았다. 돈을 쓰고 싶지 않은 나는 미친 듯이 검색을 해서 2만 원대의 모텔을 찾아냈다. 애어비앤비 후기를 읽어보니 깨끗한 곳이라고 했고, 버스도 다니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제일 저렴한 가격의 그곳에서 묵기로 했다.
업무를 보고 택시를 타고 가는데, 동네가 약간 이상하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백화점이 있는 번화가를 지나 철물점들이 있는 동네로 들어가더니 골목에 들어가서 세워주었다. 예전에 대학교 때 엠티 갔었을 때도 묵어보지 않았던 느낌의 건물, 모텔이라기 보다도 고시텔? 예전에 네이버 웹툰 중에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웹툰이 있었는데 겉면이 그 웹툰에 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냥 너무 생소해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내가 묶는 곳은 2층이었는데 카운터에는 이것저것 많은 부품들이 널려있었다. 그래도 애어비앤비의 후기대로 주인분은 친절했고, 방하나, 화장실 하나가 있는 그 방은 보기에는 깨끗했고, 수건에서 냄새가 나지도 않았고 TV도 있었다. 당황했던 점은 문을 열쇠와 걸쇠등으로 삼중으로 잠글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그 순간부터 긴장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버스가 다니는 새벽 5시쯤에 나왔다. 다음 날의 컨디션을 망친 것은 당연하고 그 여파는 며칠을 갔다. 지방출장이 나보다 잦은 동생에게 이야기했더니 엄청 잔소리를 해댔다. 거주가 얼마나 중요한데, 컨디션과 잠이 얼마나 중요한데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생각 없이 묶을 생각을 했냐고.
아이들에게는 정말 아까운 줄 모르고 돈을 쓰는 나이지만, 정작 나에게는 참으로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많은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이렇게까지 내가 나를 신경 써주지 않는데, 아이들이 이런 나를 닮을까 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분 좋게 푹 자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냥 가장 나에게는 가장 저렴한 옵션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삶. 언젠가부터 그렇게 된, 가장 저렴한 화장품과 음식, 그리고 심지어 10년도 넘게 쓰던 안경까지 (하도 스크래치가 나서 앞에 잘 안 보이게 되어서 바꾸었다). 워킹맘이라 바빠서 -라고 하기에는 자기 관리에 철저한 워킹맘들이 얼마나 많은지.
내 주변의 상황에 맞추려고만 하고, 나는 늘 부족하고. 이런 생각들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닌가. 워킹맘이니까 라는 핑계를 대면서 나에게 소홀히 하는 것이 버릇이 된 것은 아닌가.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데 아이들이 어떻게 나를 볼까. 회사에서 나오는 상품권으로 나를 위해서는 무엇을 살지 잘 모르겠는 나. 아이들에게 잘해주는 엄마, 일을 열심히 하는 회사원, 이외에 스스로를 위한 취미가 없는 재미없는 나 (재미없는 것은 남편도 인정했다). 조금은, 나만을 위한 선물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소중하게 대해줄까, 고민하게 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