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내미가 정말 엄마를 잘 보네~
저학년 딸이 나에게 웃으면서 한 얘기다. 음악가인 친구 엄마가 멋있다는 얘기를 하다가 깔깔 웃으면서 나에게 얘기했다. 같이 깔깔 웃었지만 나는 뭔가 찔렸다. 정말 요새 기계적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의 힘을 믿는 편이다. 어느 정도는 내 삶에서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40살까지 '내' 분야에서 어느 정도는 탑을 찍어봤고 ('내' 분야라는 게 커졌다가 작아졌다는 단점이 있지만), 나를 괴롭히던 주변 상황이 사실은 미디어 콘텐츠를 과도하게 보면서 생긴 나의 쓸데없는 망상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김주환 교수님이 웹툰 웹소설 웬만하면 보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나 같은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 몇 주는 생각 없이 살았다. 몸도 마음도 몸살인 채로 별생각 없이 무기력하게 살았다. 책을 봐도 기록하지도 않았고, 운동도 잘 안 했다. 무엇보다 뭔가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크레디트 스위스에 다닐 적에, rotation program이 있었다. 부서를 바꾸는 것은 흔하지 않지만, 지역은 바꿀 수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는 서울에 있다가 런던 오피스로 세일즈를 하러 갔었고, 중국에 있는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뉴욕 오피스로 지역을 바꾸기도 했다. 해외에서 일해보는 것이 정말 소원이었던 나의 꿈은 그 rotation program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크레디트 스위스는 없어졌다. 구조조정을 기다리는 와중에 나는 Sloan Fellows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그중 한 곳에서 invitation을 받았다 (https://en.wikipedia.org/wiki/Sloan_Fellows). 몇 달 열심히 준비했었고, 가고 싶었는데... 지금은 남편의 반대와 계속 올라가는 환율로 인해서 내년에 과연 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그 이후로 뭔가 다 불투명한 느낌으로 답답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정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참으로 기계적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목표가 없으니 확언이니 뭐니 하지도 않고, 운동도 안 했고, 주어진 일만 했던 것 같다. 그러고 나니 정말 우울해졌다.
그러고 나서 딱히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고, 이렇게 꿈 없이 사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들어서 다시 꿈을 찾기 위해서 장기적으로 하고자 하는 일들의 리스트를 쓰고 있다. 내가 최근의 상황들로 느낀 것은 우선 계획이라는 것이 절대로 딱딱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변동성이 높은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느냐이고, 목표라는 것은 상황이 바뀜에도 불구하고 계속 추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찰리 멍거 할아버지가 장기적으로 부자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것처럼, '어떤 행동'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했을 때 내가 이루고자 하는 '어떤'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꿈을 다시 한번 그려보고 있다.
딸에게 꿈이 있어 보이는 엄마가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