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2시 30분. 어제 미국 대사관을 다녀와서 긴장이 풀려서인지 오랜만에 밀가루도 먹고 라면도 먹었더니 손끝의 간지러움과 함께 1시 20분쯤 잠에서 깨버렸다. 어제는 이동도 많고, 대기하는 시간도 많아서 물을 챙겨서 먹을 수 없었어서 더 한 것 같았다. 조금은 비몽사몽 하면서 핸드폰을 하다가 기침을 했는데 또 지긋지긋한 편도결석이 나오면서 - 이번에는 목에 이물감도 없었다 - 완전히 잠에서 깨어버렸다. 작년 하반기부터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생기기 시작한 편도결석은 정말 면역력이 올라가야지 없어지는 건지, 별별 방법을 다 써도 완전히 없어지지가 않는다. 몸이 계속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니 - 간지러움과 수면장애 -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사실 지방에 본사가 있는 회사를 다니면서 (왕복 7시간...) 계속 잠자리도 바뀌고, 엄마로서 신경 쓸 일 도 많고, 보수의 끝판왕인 팀에서 일하는 게 쉽지는 않으니... 커피를 끊고 (내가 커피를 안 마시고 살 수 있을지는 몰랐다, 그래도 졸린 것이 미칠듯한 가려움보다 훨씬 낫다), 물을 많이 마시면서 나아졌지만, 그래도 가끔씩 목에 이물감과 함께 찾아오는 이 편도결석은 정말 지긋지긋하다.
도대체 면역력이 이렇게 떨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면, 체력적인 것도 당연히 한 몫할 것이고, 정신적인 요인도 매우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새 예전에 있던 업계 사람들 - 외국계 증권사 리서치 - 를 잘 만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나만 보면 갑이 되었다고 부럽다고 그리고 요새 장이 너무 힘들어서 (국장이 힘든 건 맞다, 하지만 언제나 힘들었다) 못해먹겠다고 징징대는데 그들의 연봉을 빤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정말 들어주기가 힘들고 스트레스 요인이 되고 있다. 본인도 옮기고 싶다고 주야장천 말하지만, 절대 옮기지 않는 이유는 연봉 때문이며, 내가 부럽다고 말하지만 (정말 말도 가려서 했으면 좋겠다 - 회사가 망했고, 우선 커리어 공백을 막기 위해서 간 것을 알고,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왕복 7시간이다 또한 챙겨야 하는 아이들이 둘이다) 본인들이 절대 옮기지 않은 이유도 그 연봉 때문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보팅을 해달라고 카톡만 띡띡 보내는데 정말 사람이 본인의 상황이 아니면 정말 너무 무지하구나 싶었다 (뭔가 부탁할 게 있으면 전화를 하자).
예전에 내가 쓴 글에서 말했듯이, 외국계 증권사에서 VP 이상을 달기 시작하면 꽤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참고로 한국에서 날고 기거나, 혹은 젊을 때 옮겨서 (30대 초중반 까지가 마지노선인 듯싶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있는 외국계 헤지펀드를 다니게 될 수만 있다면 + 보스를 잘 만난다면 (보너스를 밑의 직원에게 많이 나누어주는 포트폴리오 매니저를 만나야 한다) + (당연히) 운이 좋으면, 어닝 포텐셜은 훨씬 커진다. 정말 이제까지 딱 2명 정도 만난 거 같은데, 둘 다 싱가포르에 있는 헤지펀드를 다니다가 월급과 보너스로 30대 후반쯤에 은퇴했다 (코로나 붐이라는 운도 당연히 있었다, 그들도 대단한 사람들인 것이 그 힘든 헤지펀드에서 몇 년을 버틴 - 싱가포르 홍콩은 노동법도 없다 - 주식에 미친 사람들이다). 나는 그 사실을 이번에 잡 서치 하면서 굉장히 뼈저리게 느꼈고, 다시 돌아가지 않는 한 그 연봉이 힘들다는 것도 이제 잘 알고 있다. 보통 반토막 까지는 아닌데 나의 경우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이유는,
1) 우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외국계 증권사에 있으면 미국 혹은 유럽 기준으로 연봉을 받기에 높게 받게 된다. 어떤 미국계 회사는 달러로 월급을 준다고 들었는데, 그럴 경우 요즘 같은 때에 원화 환산 월급은 더 많이 받게 된다.
2) 내가 옮긴 곳이 사기업이 아니라 공기업이다. 나도 여기 와서 알았는데 공기업은 '밴드'라는 것이 있어서 이그 이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물론 퍼포먼스에 따라서 보너스는 들어온다.
3) 공기업의 경우 개인 투자를 거의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여기까지는 괜찮은데 - 내가 외국계 회사를 너무 오래 다녔다가 공기업이라는 완전 반대로 온 것도 적응이 힘들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우리 팀의 경우 제대로 투자를 할 수 없어서 답답하다는 점 (월급을 희생하고 온 이유가 무색하다), 무엇보다도 왕복으로 7시간이 넘게 걸리기에 체력이 힘들어지면서 몸에 많은 이상 징후들이 느껴지고, 가족들에게 소홀하게 된다는 점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있다. 물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투자를 준비 (준비를 정말 오래 하고 있다)를 해야 하기에, 매크로에 대한 이해가 정말 많이 높아졌다. 또한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혹자의 말처럼 레쥬메에 쓰기 좋은 회사이다. CFA 레벨 2 공부도 하고 있다. 하지만 반토막난 월급은 좀 가슴이 아프다.
이 상황에서 사실 갈대처럼 휘날리고 있다. 괜찮았다가, 우울했다가, 힘들었다가, 즐거웠다가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그룹사람들이 - 나의 월급의 두 배 이상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 힘들다고 징징대면 너무 짜증이 난다. 예전부터 사람들이 나한테 징징 많이 대는 편인데, 이번은 정말 안 그랬으면 좋겠다. 본인의 섹터가 안 좋아져서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말했던,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지인의 연락을 안받기 시작했다. 우리가 친했으니 너한테 밖에 말할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정말 너무 기가 막혔다. 현재 50대로서 업계의 모든 영광을 누리고 아이들 대학까지 다 보낸 분이 나한테 부럽다고 하셨을 때도 너무 황당했다. 진심이 아닌것도 느껴지고, 정말 나는 남의 상황에 대해서 쉽게 말하지 않으리라 - 고 다짐했다.
만약에 내가 대인배라면, 인맥을 계속 유지하고 + 현 상황에서 긍정적인 상황만 바라보고 (지금 경기가 이렇게 힘든데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지) + 과거는 뒤돌아 보지 않으며, 앞으로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갈지에 대해서 건설적으로 고민하겠지만, 아는 아직 그런 대인배는 아닌가 보다 싶다. 찰리 멍거 아저씨도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말라고 했는데.. 참 그게 잘 안된다. 그들의 징징거림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대인배는 아니고, 일 뿐만 아니라 집안일들도 챙겨야 할 일도 너무나 많다는 생각,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우울하고 이렇게 새벽에 잠을 못 이루게 된다... 이렇게 글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그나마 내가 극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그리고 희망이 조금이라도 든다.
오늘은 집에서 5시 50분에 나가야 하기에 다시 잠을 자기보다는 최근부터 쓰기 시작한 소설이라도 쓰다가 출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