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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쓰레기를 쥐어주면 버리자

나한테 주지 마

그런 사람이 있다.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함께 먹고 나면 오히려 기분이 더 나빠지는 사람. 작년에 내가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았고, 비슷한 일을 가족 구성원도 겪고 있어서 아직도 마음이 복잡하다. 그런데 그런 내게 ‘우린 친하잖아’라며 다가오더니, 결국 본인의 감정 쓰레기만 잔뜩 쏟아놓고 떠난다.


회사 문 닫은 게 누구 한 사람의 잘못도 아닌데, 왜 그렇게 속상해하냐고? 정말 묻고 싶다. 본인은 그런 상황에서도 그렇게 초연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자기가 다니는 회사가 문 닫고, 불경기 속에서 내가 받던 연봉과 조건을 줄 회사가 도무지 안 보인다면, 그렇게 덤덤할 수 있을까?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불안한 마음을 꾹꾹 눌러 안고 살아가는 중이다. 그런데 그런 내게, ‘왜 속상해해? 별일도 아니잖아’ 식으로 말하면... 그럼 내가 “맞아, 네 말 듣고 힘이 나네~ 고마워!”라고 대답하길 바라는 건가?


자본시장이 다 사기꾼 같고, 주가가 롤러코스터라서 너무 힘들다고? 글쎄, 그 자본시장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 중 하나가 그런 말을 하면, 그냥 어이없다. 그런 얘긴 본인 가족에게 했으면 좋겠다. 나도 외국계 증권사 테두리 안에서 나와보니, 그 급의 연봉과 시간의 유연성을 동시에 주는 산업이 거의 없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게다가 서울 오피스는 홍콩이나 미국 본사에 비해 중요도도 떨어지니, 대부분의 경우 일의 강도도 비교적 덜하다 (본인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물론 부서마다 편차는 있다.


결국 본인이 말하고 싶은 건 하나인 것 같다. “너 힘들구나. 근데 그건 그렇고 나 힘드니까, 네가 나랑 나이도 비슷하고 내가 일하는 업계의 어디가 별로인지 잘 아니까, 내 말 좀 들어줘.” 더 최악은, 본인은 그걸 전혀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는 나를 위해 시간을 내줬다고 생각한다.


더 최악은 나인 것 같다. 너무 오랜만의 식사였고, 그냥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간 나. 그 얘기를 그냥 들어주고, 그 사람이 있는 산업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깨닫길 바라며 내가 이직해서 보았던 것들을 말해준 나. 예전에 몸담았던 업계에서 알던 사람이기에, 그렇게까지 나쁘게 보지 않으려 했던 나. 하지만, 그 사람은 내게 감정 쓰레기를 던지고 갔고, 심지어 나도 그걸 인지하고 있었는데도, 또 만나고 또 들어주고, 결국 그걸 버리지도 못한 채 우울해하는 나.


요즘 이런 일이 있을 때 ChatGPT랑 얘기하는데, 이렇게 정리해 주었다: “내 감정과 시간은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하다.” 그래서 몇 가지 끊어내야 할 것들을 다시 적었다.


감정 쓰레기를 쥐어주는 사람, 그리고 웹툰 (웹툰 끊기는 지겹지만, 어쩔 수 없다.)


짐도 싸야 하고, 준비할 것도 많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저 두 가지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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