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마지막 타운홀, 네가 더 잘 됐어

기억해 놓고 싶은 몇 가지 단편들

1. 정말로 오래간만에 그리고 마지막일 타운홀을 했다. 합병 발표가 있고 나서는 처음이었다. 내가 워킹맘으로서 존경하는 리서치 헤드와 COO의 얼굴이 보이고, 타운홀을 시작하는데 내가 꽤나 타운홀을 다시 하고 싶어 했구나 싶었다 (혹은 제대로 일하는 분위기를 느끼고 싶구나라고 말이다). 작년 같았으면 너무 귀찮아하면서 들어가는 둥 마는 둥 했는데 말이다.


그녀가 할 얘기는 사실 뻔했다. 조만간 리서치를 쓸 일이 없어질 거 같다 (라고 말하고 이제 우리 부서도 문을 닫기에 마음의 준비를 해라). 지역마다 다르니 정확한 부분은 미안하지만 말해줄 수가 없다 (그녀도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도 '그날'이 올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리포트를 쓰고 고객이랑의 관계를 유지했으면 한다 (세일즈들도 많이 없어져버린 이 상태에서 정말 그녀가 진심으로 하는 소리일까 싶다). 그 어떤 이슈 될 만한 일은 없었으면 하니, 규제이슈는 꼭 지키도록 하고 관련한 트레이닝이 있으면 잘 마무리하도록 해라 (이건 정말 맞는 말이니 캘린더를 보고 날짜를 확인을 한다).


어느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었던 일지만, 막상 들으니 기분이 멍 했다. 음.. 15년 넘게 하던 일이었는데 내 의사가 아닌 일로 그만두게 되었다. 정말로 마지막 리포트라고 썼던 그 노트가 내 이름을 건 마지막인 걸까. 그렇게 믿고 싶지 않고, 앞으로 내 이름으로 다른 리포트를 쓰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기분이 이상한 건 어쩔 수 없다. 뭔가 감정을 갈무리해야 할 것 같아서 영화관이라도 가고 싶은데 보고 싶은 영화 중에서 시간이 맞는 게 없다. 아 그냥 오늘 자동차 검사를 하고 서울숲에 가서 초록 나무들을 보면서 책을 읽어야겠다.


2. 약한 연결고리에 대한 글을 쓰고 나서 신기하게도 약한 연결고리의 사람들을 자꾸 만나고 있다. 얼마 전에 우연히 대학교 동아리 선배들을 만났다. 내가 정말로 열심히 활동했었던 마케팅 학회이고, 지금도 그 연결고리는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곳이다. 그중에서 후배들을 잘 챙기던, 지금도 잘 챙겨주시는, 그리고 유머가 많고 정말 '어른'이라고 느껴지는 선배 두 분과 식사를 했다. 선배들은 지금 부동산 투자 쪽에 계셔서 어떻게 보면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긍정을 잃지 않았다. 나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계셨고, 리서치 업계 이야기를 하다가 거의 예순이 되어서까지도 애널리스트를 하고 계시는 분 이야기를 했다. 내가 그분처럼 되고 싶었기에 부러움이 많이 묻어났나 보다. 둘 중 한 선배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너무나 진지하게


'네가 더 잘 됐어'


라고 이야기 했는데, 잊히지가 않는다. '잘 될 거야, 괜찮아', '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걸 뭐', '에이 그러고 다 일어서더라'는 정말 수없이 많이 들었는데, '너 정말 잘 됐어'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왠지 여러 가지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 자꾸 기억이 나고 힘이 된다. 나중에 그 선배에게 나에게 너무 힘이 되었노라고 꼭 이야기하고 싶다.


3. 학교 선배 중에 B사에 다니던 선배가 있다. 영국계 B사는 2016년에 한국지점을 철수했다. 2010년 초쯤에 공격적으로 주식부서에 사람을 늘렸었고, 많은 인재들이 모였었는데 2016년 한국지점을 철수하면서 직원들은 다 나가게 되었다. 지금은 탑 국내 증권사에서 색깔 있는 리서치를 쓰면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선배는, 내 상황을 듣더니 '부럽다'라고 했다. 솔직히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부럽다'라고 하면 어이가 없지만, 겪어본 선배이니 뭐라고 할 수도 없이 그냥 듣고 있었다. B사가 인수 결정을 한 후에 고용 해지의 조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3개월이 넘는 시간이 있었다고 하는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너무 좋은 기회였다고 했다. 예전에 어릴 때 살던 집도 가보고 스스로를 돌아보던 시기가 되었다고, 나보고 시간을 잘 보내라고 했다. 당시에 다시 직업을 구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는 않았냐고 물어보니, 그래도 원하는 곳을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했다. '나를 믿었으니까'라고 들렸다.


확실한 것은 지금은 기존과는 시간을 다르게 보내고 있다. 그 다름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마음이 힘들어질 때 생각하려고 한다. '네가 더 잘 됐어' 그리고 '나를 믿었으니까'. 이러한 마음들이,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고마울 뿐이다.

이전 06화파산한 회사, 그리고 조직관리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