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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의 성장일기 Mar 11. 2024

80%는 대응이더라

안녕 브런치, 나는 대응하고 있어  

안녕 브런치, 


나에게 매몰되어 있는 나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하다가, 내가 예전에 써 놓다가 임시 저장해 둔 이 글을 보았어. '80%는 대응이다'라고 써져 있구나. 맞아, 너무 중요한 내용 같으니 이 주제로 우선 글을 써 봐야겠다. 


맞아, 정말 80%는 대응인 거 같아. 특히 한국이 예전처럼 장기성장하는 나라가 아니라서, 회사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면 많은 부분들이 보상받는 사회가 아니라서 더 그런 것 같아. 나는 순진하게도 그런 줄 알았어.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열심히 하면 모든 것들이 보상받을 줄 알았어. 그런데 말이야, 한국에서 1등이라고 해서 들어간 외국계 증권사가 내가 들어간 지 5년이 지나고 나서 망하더라고. 


응 5년, 길면 길고 짧으면 짦은데, 나 그래서 좀 힘든 거 같아. '일'이라는 게 아이가 둘인 워킹맘임에 너무나 중요했던 나이기에 나는 정말 자존감에 큰 스크래치를 받았던 거 같아. 


작년 3월이었어. 작년 3월에 회사가 파산했어. 정말 요란하게도 전 세계 뉴스에 나왔지. 그러고 나서 경쟁사랑 합병을 했고, 작년 9월에는 내가 일하던 업무를 다 닫아버리더라고. 왜냐하면 나는 없어질 회사니까 말이지. 그리고 지금 또 3월이야. 생각해 보니까 거의 1년을 끌었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고? 솔직히 나도 완전히 잘 알지는 못하지만, 외국계 회사가 한국에서 사업을 철수할 당시에는 여러 가지 규제적인 이슈가 있더라고. 그래서 이제는 거의 막바지야.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냐고? 아이들이랑도 시간을 많이 보냈고, 그리고 미국 대학원 준비를 꽤 열심히 했어. 토플도 보고, EA라고 GMAT의 간단화된 버전의 시험도 보고, 그리고 에세이도 썼지. 아 쉽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쓰고 나니까 마음이 시원하더라. 스스로에 대해서 그렇게 열심히 고민하고 써본 게 얼마만인지 몰라. 그리고 정말 엄청나게 나를 괴롭혔어. 괴롭혔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싶지도 한데, 음.. 정신과도 가보았어. 그런데 정신과 약은 나에게는 정말 잘 듣지 않더라고. 그래서 한번 먹고 버렸어. 


그런데 말이야, 나 이제 시간이 꽤 많거든. 2월 중순에 대학원 원서도 썼고, 이래저래 시간이 많은데, 일할 때는 정말 시간이 더 있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나 지금 그냥 나를 괴롭히기만 하고 있어. 물론 애들이랑 시간도 많이 보내고 책도 읽고 그러고 있기는 한데, 그냥 뭔가 일할 때도 행복하지 않았고, 지금도 행복하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왜 그럴까?? 


글쎄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냥 외부 상황에 갈대처럼 이리저리 대응만 하고 있는 거 같아. 그러니까 마음이 너무나 힘드네. 지금도 그래, 내가 원하는 게 정말 확실하게 있으면, 여기에는 No, 저기에는 Yes라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할 텐데, 그리고 고민도 덜하고, 시간도 효율적으로 쓸 텐데 나는 지금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으니까 더 힘든 거 같아. 그래서 어떻게 대응을 잘할 수 있을 까라고 생각해 보았어. 


1.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하더라고. 그리고 그 비전을 세울 때 가족들이 있다면 같이 대화를 하는 게 중요해. 어쨌든 나는 가족이랑 같이 살고 있고 행복하려고 하는데, 대화 없이 살면 나는 나의 생각에 매몰되서, 나의 비전이 가족의 비전에 상충되는 상황도 오는 것 같아. 


2. 내가 제일 후회되는 건, 이 업계가 힘들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면서 그냥 안주해 있었다는 거야. 물론 아이 둘 케어하면서 워킹맘으로서 쉽지 않고, 그것 때문에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시간을 그냥 보낸 거는 맞아. 음.. 솔직히 웹툰에 보낸 시간에 운동을 했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허탈하기도 하네.  


3. 남의 말 진짜 듣지 말자. 우선 나는 요새 참 힘들었어. 작년에는 그래도 회사에서 나를 밀어내려는 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거든. 16년 넘게 일하다가 아직 갈 곳이 없는데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여기저기 지원하고 있어. 그래서 나는 완전히 내 생각에 매몰되어 있고 사람들도 나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줄 알았어. 


그런데 사람들은 그냥 나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더라. 본인 생각에 바빠서 그냥 나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더라고. 하긴 남편도 자기 일에 바쁜데,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관심이 있겠어. 나는 이번 기회에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안 하는 법을 배우게 된 거 같아서 그거는 참 기뻐. 


생각해 보면 투자도 대응이야. 주식이 조금 떨어졌을 때 바로 팔 수도 있고 주야장천 떨어질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는 거랑 똑같아. 지금 나의 과거에 질척거리는 마음을 바로 팔아버리고 새로운 주식으로 갈아 탈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거 같아. 


그럼 브런치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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