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나에게
안녕 지금은 새벽 3시네, 너 어제도 새벽 6시에 있었던 대학원 인터뷰 때문에 3시에 일어났잖아. 그런데 또 잠을 못 자고 있구나. 한의원에서 처방받았던 약도 딱히 소용이 없네.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두 달에 한 번꼴로 감기에 걸리고 지금도 콜록콜록 대고 있는 너 정말 딱하다.
너 참 딱하다. 머릿속이 진짜 괴롭잖아. 내 머릿속은 지옥이라고 느끼고 있잖아. 근데 너 솔직히 그렇게 나쁜 상황도 아니잖아.
위로금을 둘러싼 갈등은 어느 정도 막바지(?)로 가고 있고, 네가 가고 싶어 했었던 대학원은 인터뷰를 잘 봤고 그리고 어떤 회사에서 오퍼도 받았잖아.
하지만 넌 그걸 즐기지 못하고 있잖아. 우선 위로금을 둘러싼 갈등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으니 그 부분이 혹시나 회사로 가게 되었을 때 시점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까봐 걱정되는 거고, 대학원을 가게 되면 가족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그것도 걱정이 되는 거고, 그리고 사실 그 회사는 좋은 기회일 수는 있지만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걱정하는 거잖아.
무엇보다 마지막에 부분에 있어서, 지금 불안한 상황이 계속 오래된 너는 그 회사에 가게 되었을 때 아이들과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을 자세히 생각하지 않고 빨리 결정하라고 압박이 오니까 그냥 Yes라고 했잖아. 이번 한 번뿐만이 아니야. 가고 싶지 않은 회사에 인터뷰를 볼 때, 마음 편하게 연습한다고 생각하자라고 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제로 연습이 되기는 하지), 너는 혹시 되었을 때 어떻게 No를 하지라고 걱정을 하잖아. 지금도 그래, 너 아직 그 회사 안 갔어. 가기까지 두 달이나 남았는데, 그래서 그전에 No라고 해도 되는데 그걸 할 생각을 하니까 지금 미쳐버릴 거 같은 거잖아.
회사가 파산을 발표하고 나서 작년 말부터 인터뷰를 보기 시작하면서 너의 걱정과 불안은 점점 도를 넘어가고 있는 것 같아. 그 불안으로 인해서 아이들에게 엄마 피곤하니까 이해해 달라고 하고 있는 거잖아. 남들의 페이스에 말려서 No라고 말하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남들한테는 당당하지 못하면서 아이들 앞에서 아이들은 내 말을 당연히 듣는 약자니까 쉽게 대하고 있는 거잖아.
제발 그만해. 제발, 남들 신경 좀 그만 써. 제발 제발 제발 부탁이야. 그냥 No라고 해.
그래 네가 No라고 말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거 알아. 우선 이 상황 자체가 너무 불확실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쉽지 않아.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이 기회 저 기회 다 잡고 보험을 들어놔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잖아. 그럴 수 있어. 그런데 그러면 worst case scenario 생각하면서 걱정하는 것도 그만해. 그냥 제발 과거를 잘라버리고 앞을 보면서 살 수는 없니?
나는 알아 왜 네가 힘든지. 우선 너는 지금 너를 잘 몰라. 그래서 모든 오퍼에 Yes를 하고, 그리고 그중에서 나중에 No를 하려니까 - No를 하기에 힘든 너로서는 - 너무너무 힘들겠지. 그리고 너는 전형적으로 생각이 무지하게 많은 사람이고, 이것들을 머릿속에서 두고 있으니 너의 머릿속은 지옥 같겠지. 또한 너는 너 스스로에게 기본적으로 비판적인데, 이런 상황들이 계속되니 스스로에게 너무나도 비판적이 되어가고 있지. 매우 차라리 아무런 오퍼도 없었던 - 그때는 회사의 정리작업이 시작 전이었지만 - 작년 3분기에 너의 정신건강이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너의 지옥같은 머릿속. 이제 그만할때 되었어. 너 사실 지금은, 회사의 반응을 기다리면서 대학원 발표를 여유있게 기다리면서 쉬어도 되는 구간이야. 이렇게 계속 본인을 비판하면서 살 수는 없을 것 같아. 우리 방법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