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출장으로 늦어져 죄송합니다
갑작스러운 출장준비로 일요일을 넘겨버리고, 벌써 수요일. 교육받은 엑셀이 머릿속에서 정신이 없고, 이번주를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그래도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 수요일이지만, 늦었지만 쓰고자 한다. 이번에는 개인적인 면보다는, 큰 외국계 증권사에 재직한 애널리스트였기에 경험할 수 있었던 상장경험을 써보고자 한다.
얼마 전에 신문을 읽었다. 상장에만 참가하는 펀드가 있고, 수익률이 정말 좋았다고 나와있었다. 사실, 최근에 상장한 대다수의 주식들의 수익률이 매우 좋았다. 하지만 나는 IPO라고 하면 왠지 씁쓸하다. 나에게 승진을 선사해 준 2021년의 가장 대형 IPO의 주가는 상장가의 3분의 1토막에서 2분의 1토막으로 손실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IPO의 명가'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회사에 재직했던 나는 코로나와 더불어 장이 활황세를 띄면서 세 번의 IPO에 투입되었었다. 하나는 미국에 상장된 이커머스 회사, 두 번째는 한국에 상장된 게임회사 그리고 마지막은 주식시장 활황의 끝에 시도했지만 IPO까지 가지 못했던 통신사 대기업의 자회사였다. 첫 번째 IPO에서부터 장이 계속 올라가더니, 두 번째에서 피크를 찍고, 세 번째에서는 모두가 냉소적으로 변했다. 회사는 딱히 변하지 않았는데, 벨류에이션과 미래 전망만 변했다.
IPO를 하는 과정에서 애널리스트는 거의 막판에 투입된다고 보면 된다. 기업금융 부서에서는 IPO전에 회사와 이미 다양한 딜을 하거나 고위직에서 지속적으로 미팅을 하면서 관계를 오랫동안 구축해 놓고 (여기에 외국인들은 따라갈 수 없는 로컬 파워가 들어간다), 그다음에 경쟁을 통해서 증권사가 주관사로 선정이 된 후, 대략적인 상장 시점이 나오면 그때 애널리스트가 투입이 된다. 그러니까, 돈을 벌어오는 딜을 가져오는 주체는 기업금융 부서이고, 애널리스트는 마지막 퍼즐 - 하지만 중요한 - 을 맞추기 위해서 투입이 된다. 기업금융부서 (Investment Banking Division)가 세일즈를 하는 걸 보면, 그들이 왜 리서치보다 연봉과 보너스를 더 많이 받는지 이해하게 된다. 외국계 회사 뱅커라고 세련되게 차려입고 명함만 돌리지 않는다. 그러면 잘린다. 내가 본 사람들 중에서는 제일 잘 나가는 뱅커가 제일 '한국적으로' 영업하고, 어느 때는 주말과 자존심과 체력을 바치는 그들의 서비스 정신에 경외감마저 들 정도이다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존경심이 든다).
이렇게 막판에 참여한 애널리스트는 회사와 미팅을 하고, 그 자료를 토대로 투자자들에게 상장 회사를 소개하고 세일즈 할 PDIE (Pre-Deal Investor Education) 자료와 모델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다. 동료 애널리스트와 커미티 그리고 법규적인 면에서도 검토를 받아야 하는데,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아서 야근이 필수로 동반되었다. 승인을 받고 나서는 본격적인 PDIE가 시작되는데, 코로나였기에 줌 콜로 이루어졌다. 과거에는 출장으로 아시아/유럽/미국을 커버했다고 들었는데, 줌으로 하니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종일 자리에 앉아서 다양한 시간대의 고객들과 콜을 해야만 했다. 새벽에는 미국, 아침부터 이른 오후까지는 아시아, 늦은 오후에서 밤까지는 유럽 및 미국. 처음에는 출장을 안 가도 되니까 좋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정말 울고 싶고 마지막 콜을 할 때는 미팅을 빨리 끝나고 싶어서 투자자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한 적도 있었다.
제일 미팅이 많았던 PDIE가 바로 2021년의 가장 기대를 받던, 사이즈가 가장 컸던, 그 게임회사였다. 이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게임 IP 하나로 성장을 했기에 앞으로의 추측에 대해서 기대치들이 매우 달랐다. 게임 IP 하나로만 성장할지, 아니면 이 회사가 다른 IP를 성장시킬지에 따라서 실적 추정치도 바뀌고 그리고 벨류에이션도 달라졌기에 주가가 어떻게 흘러갈지 그 예상치의 범위가 너무나 컸다. 솔직히 회사에서 많은 자료를 받은 나도 미래 추정치를 정확하게 추정할 수는 없었다 (게임산업의 특성상 더더욱 그렇다). 예상치의 범위를 추정해서 그 자료를 토대로 이야기를 했는데, 그 범위가 꽤나 컸었다. 그래도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긍정적이었다. 워낙에 큰 IP였고, 성공을 전 세계적으로 크게 했으며, 무엇보다 주식시장의 벨류에이션이 올라가 있었다. 아주 멋들어지게 상장을 했고, 주가는 상장 첫날부터 빠졌다.
상장을 하고 주가가 오르면 많은 사람들이 수혜를 받는다. 투자자뿐만 아니라, 그 딜을 수행한 기업금융부서의 뱅커들과 - 사이즈가 클수록 수수료를 많이 받는다- 상장 과정에서 주식을 판 경영진들이 '리스크가 없이 가장 확실한' 수혜를 받는다. IPO과정에서 이 두 참여자의 입김이 가장 크기 때문에 상장가는 보수적으로 정해질 수가 없다. 미래는 아름다워 보일 수밖에 없다. 최대한 글로벌 기준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상장업무를 하겠다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주관사는 IPO의 사이즈가 커지기를 바란다.
반대로 상장가가 높으면 투자자에게 좋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의 주가는 리스크를 동반하고 있고, 그것은 그 누구도 정확하게 추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글로벌 피어 대비해서 전혀 저렴한 벨류에이션이 아니었던 그 회사의 주가를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상장에 참여했던 투자자들의 원성을 들었던 사람은 담당 애널리스트였던 나였다. 애널리스트의 직무로 보자면 업무를 잘했다고 말하기는 힘든데, 그런 나를 잘했다고 회사는 승진을 시켜줬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아니면 그냥 순진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