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틈이 일도 하고, 틈틈이 글을 쓴다. 틈틈이 책을 읽고, 틈틈이 요리를 한다. 틈틈이 수업도 듣고, 틈틈이 공부도 한다. 틈틈이 대화를 나누고, 틈틈이 우엉차를 마신다. 틈틈이 아프고, 틈틈이 수액도 맞고, 틈틈이 병원도 간다. 틈틈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틈틈이 구름을 본다. 틈틈이 사진도 찍고, 틈틈이 산책도 한다. 틈틈이 기지재를 켜고, 틈틈이 마음도 챙긴다.
이렇게 내 삶은 '틈틈이'라는 단어 위에 놓여 있는 듯하다. 작은 틈마다 스며드는 사소한 움직임들로 하루가 이어진다. 틈들이 모여 한 날을 지탱하고, 그날들이 이어져 하루의 삶을 만들어간다. 큰일 하나에 전부를 걸고 지쳐버리는 대신, 나는 작은 틈들을 모아 하루를 충만하게 한다. 짧은 순간에도 손에 닿는 책을 읽고, 싱크대 위에 남은 그릇 하나를 정리하며, 걷다가 발길이 닿는 곳에서 시선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순간들 속에서 오히려 삶을 발견한다.
틈틈이라는 말에는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있다.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목표나 오늘 끝내야 한다는 다짐의 무게가 없다. 대신 조용히 스며드는 바람처럼, 나를 살짝 흔들고 지나가는 자유가 있다. 그래서 틈틈이 하는 일들은 늘 부담스럽지 않게, 그러나 확실하게 하루의 삶을 채워준다.
아침에 하는 일도 틈틈이의 연장이다.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온 빛을 바라보다가, 일어나자마자 곧장 무언가를 하기보다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 짧은 순간이 하루의 톤을 결정해 준다.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잠시 멈출 수 있는 고요가 내게는 틈틈이의 힘이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난 뒤의 짧은 산책도 틈틈이다. 길가의 나무에 단풍이 물드는 잎을 본다든지, 바람이 스치는 소리를 잠시 귀에 담는 것만으로도 오후의 피로가 줄어든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 일도 아닌 시간이지만, 내게는 마음을 새로 고쳐 잡는 소중한 틈이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할 때에도 틈틈은 존재한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책을 한 장 읽고, 냄비에서 김이 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비운다. 손이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생각은 잠시 멈춘다. 그 잠깐의 틈에 하루가 풀리고, 새로운 문장이 떠오르기도 한다. 나는 종종 큰 성취를 이루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누군가는 남들 앞에서 자랑할 만한 업적을 쌓고, 또 누군가는 눈에 보이는 결과로 삶을 설명한다. 그런 기준 앞에서 나는 내 삶이 한없이 미미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내가 걸어온 길은 틈틈이의 기록이었다고, 그 기록들이 모여 만든 매일의 삶은 결코 작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글 한 편이 완성되지 않아도, 틈틈이 적어둔 문장들이 모여 언젠가 나만의 이야기가 된다. 책을 다 읽지 못해도, 틈틈이 읽은 몇 장이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준다. 크루와의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아도, 틈틈이 나눈 짧은 말속에서 마음이 오간다. 삶은 언제나 거창한 게 아니라, 이런 작은 틈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틈틈이 살아가는 방식은 어쩌면 나의 본성과 닮아있다. 나는 늘 무언가를 크게 내세우기보다, 작게 협업하듯 살아왔다. 세상은 더 빠르게, 더 크게, 더 화려하게 나아가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사이사이에 남은 틈을 소중히 붙잡으며 살고 싶다.
어쩌면 나의 하루의 비밀은 틈틈이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완벽한 시간이 아니라, 빈틈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우리 삶을 결정한다. 틈틈이 웃는 웃음, 틈틈이 마신 따뜻한 차, 틈틈이 나눈 말 한마디가 모여 마음을 단단하게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새 삶은 오롯이 채워져 있다. 나는 오늘도 틈틈이 살아간다. 틈틈이 글을 쓰고, 틈틈이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언젠가 이 작은 틈들이 모여 내 삶을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작은 틈들 속에서 나를 키워가고, 그 틈에서 흘러나온 빛으로 하루를 이어간다. 결국 틈틈이 살아낸 날들이 나의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