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내가 낯설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분명히 나인데, 예전과는 다른 얼굴이 있다. 눈가에는 잔잔한 주름이 새겨졌고, 웃을 때마다 그 선은 더 깊어졌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나는 흰빛은 이제 감출 수 없는 흔적이 되었다. 젊을 때는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두려워했지만, 막상 그 시간이 되어 보니 생각만큼 낯설지 않았다. 다만 조금씩 달라지는 얼굴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사람들은 흔히 나이가 들면 단단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건 오히려 그 반대다. 단단해지기보다는 더 잘 흔들리고, 쉽게 눈물이 난다. 예전에는 웬만한 일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울면 약해 보일까 봐 애써 웃으며 넘기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사소한 일에도 눈물이 고인다. 친정엄마의 손주름을 보아도 그렇고, 남편 머리 염색을 해줄 때도 그렇다. 그 순간들이 마음을 파고들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나이 듦의 흔적라고 말한다. 눈물이 많아졌다는 건 세상을 더 깊게 느낀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무감각한 단단함보다 쉽게 흔들리는 연약함이 오히려 더 사람답다. 나이 듦은 내 마음의 결을 더 세심하게 남겨 놓았다.
기억은 예전만큼 또렷하지 않다. 며칠 전에 나눈 대화가 희미해지고, 중요한 약속도 달력에 적어 두지 않으면 금세 잊어버린다. 예전 같으면 스스로를 나무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잊는다는 건 덜 집착한다는 뜻 같아서다. 오래 품어 두었던 서운함이나 분노가 서서히 흘러내리고, 그 자리에 조금은 넉넉한 마음이 들어온다. 흐릿해지는 기억은 때로 나를 가볍게 만든다.
나이가 들면서 달라진 건 또 있다. 젊을 때는 늘 앞만 보며 살았다. 내일이 더 중요했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나를 이끌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일은 알 수 없고, 어제는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건 오늘뿐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내가 좋아하는 구름을 더 오래 바라본다. 바람에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구름을 보면, 지금의 나도 그 안에 스며 있는 듯하다.
지금의 모습이 마음에 드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예전 같으면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더 젊고 더 생기 있던 시절이 그립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 모습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고 부족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살아 있는 나를 발견한다. 완벽했던 순간은 쉽게 잊히지만, 모자람이 많았던 날들은 오래 남는다. 언젠가 지금의 나 역시 기억 속에서 반짝할 것이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변해가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느려지고, 연약해지고, 쉽게 흔들리면서도 그 안에서 다시 단단해지는 과정이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서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나다. 오늘도 주름진 눈가와 흐릿해진 기억, 쉽게 고이는 눈물이 모두 나의 현재다. 지우지 않고,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기로 한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흘러가지만, 나는 나대로 천천히 걸어가면 된다. 느린 걸음에도 시간은 결국 답을 내어줄 것이다. 내 모습은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여전히 그려지고 있는 스케치와 같다. 선이 삐뚤어지기도 하고, 색이 번지기도 하지만, 그 모든 밑그림이 나를 만든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나대로 살아 있고, 나대로 아름답다. 눈물이 많은 나, 나이 들어가는 나, 조금씩 단단해지는 나, 그 모든 모습이 오늘의 나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