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 구름
매일 아침 중얼거리는 주문처럼, 독립이라는 단어를 되뇐다. 그 말은 달콤하면서도 아득하다. 손에 잡힐 듯 가까워도, 막상 다가가면 허공으로 흩어지는 단어. 누군가에게는 자유의 다른 이름일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마음의 쉼 같은 것이다. 누군가는 자녀의 성장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고 말하지만, 그 속에서 점점 잃어버리는 나를 본다. 그래서 나는 마음의 독립을 연습 중이다. 내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나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오늘 하늘에는 상어 모양의 구름이 떠 있었다. 희미하게 퍼진 흰 구름이 거대한 입 모양 그리고, 공기의 흐름이 만든 꼬리, 멀리서 보면 평화롭지만, 실은 언제라도 무언가를 삼킬 듯 긴장감이 감도는 하늘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나를 짓누르는 불안과 긴장도 저 상어 구름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겉으론 잔잔하지만, 속으로는 언제든 폭풍이 될 수 있는 기류가 숨어 있다. 아이의 한마디, 거친 말들이 나의 마음을 뒤흔다.
에베레스트산의 해발고도는 8,848.86m라고 한다. 요즘 내게 그 숫자가 청소년 아이로부터 떨어지고 싶은 거리처럼 느껴진다. 말 한마디가 공기 저항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질 만큼 멀리, 가능하다면 그보다 더 멀리, 지구의 자전축을 사이에 둔 반대편으로까지, 완벽한 고요 속에서 혼자 숨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특히 주말이 더 그렇다. 달력에 붉은 글씨가 보이는 주말이 오면 나의 머릿속에 아이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탈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번 주엔 어디로든 떠나야지. 하지만 생각은 늘 계획으로만 남는다.
말이란 걸 처음 가르쳐준 건 나였다. 예의 바르고 따뜻한 단어들을 입에 물려주며 아이의 세상을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중3 어느 날부터인가, 단어들이 전부 변질되어 돌아왔다. 정성껏 키운 나무가 어느 날 내 쪽으로 날카로운 가지를 내미는 기분이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휘청이고, 그 작은 상처가 하루 종일 아리다. 사춘기라서 그렇다고, 다들 지나가는 시기라고들 말하지만 그 위로는 현실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예의 바르고 착한 아들들은 늘 친구의 아들일까. 그들의 평화로운 뒷모습은 내게는 이루지 못한 이상향처럼 아득하고, 어쩐지 비현실적이다. 어쩐지 영상 속 한 장면 같고, 현실 같지 않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 나는 오늘도 마음의 독립을 연습 중이다.
이건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아이에게서 게임 소리와 유튜브의 소음에서, 듣는 이를 지치게 만드는 말투에서 멀어지고 싶다. 고요가 없는 삶은 산소가 희박한 고산지대 같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판단력이 흐려진 나는 지금 심각한 정신적 산소 부족 상태 속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계속 이어진다. 같은 하루를 나누며 밥을 먹고, 같은 공간에서 참으며 살아간다.
독립이라는 건 어쩌면 물리적인 거리보다 마음의 자유를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말에 휘청이지 않고, 아이의 반응에 내 감정을 쏟지 않는 상태, 그것이야말로 진짜 독립 아닐까. 나는 그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듯 매일 연습한다. 아이의 거친 말 한마디에도 침착하게, 속으로는 카운트를 세며 마음의 근육을 강화한다.
어쩌면 이 시기는 내게도 사춘기 같은 시기인지 모른다. 아이의 성장통만큼이나, 엄마의 성장통도 크다. 아이가 나를 떠나 독립하듯, 나 또한 아이로부터 독립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서로를 놓아주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상어 모양의 구름이 흩어지고 있다. 그날의 포식자는 어느새 부드러운 흐름으로 변해 있다. 구름은 본래 그렇게 사라지는 존재로 무섭게 보이던 모습도 결국엔 흩어지고, 다시 평화로운 하늘로 돌아간다. 언젠가 아이도 사춘기가 지나가면, 상어 구름이 지나간 자리에 남을 것은 서로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 고요한 하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