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구름
친정어머니는 요즘 부쩍 "잊음이 나슨해졌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낯설어서 사전을 찾아보니 경남 방언으로 '헐겁다, 풀리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였다. 그렇게 알고 나니, 어머니가 말한 나슨해진 잊음은, 마음속에서 단단히 매어 두었던 기억이 차츰 느슨해지고 흘러나오는 상태를 뜻하는 것 같았다. 잊음이 단단히 묶여 있던 시절은 그나마 견딜 수 있었는데, 매듭이 풀려 하나둘 흘러나오는 순간은 더 서글프고 아려왔다.
어머니는 특히 가을을 타셨다. 나무의 잎이 하나둘 지고 바람이 서늘해질 때면, 돌아가신 아버지를 더 깊이 그리워하셨다. 아버지를 하늘로 보낸 작년 첫가을, 그리고 다가올 겨울의 적막을 미리 짐작하며 눈시울을 붉히시곤 했다. 나는 그 옆에서 엄마를 따라 마음이 같이 동요되어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데, 떠난 이들을 생각하며 계절마다 애달파하는 일은 어쩌면 남은 자의 몫일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일주일 만에, 작은 외삼촌 마저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암과 싸우며 항암치료하며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도 충분히 가슴을 도려냈는데, 또 한 번 예기치 못한 이별이 찾아왔다. 슬픔은 겹겹이 쌓여 무너질 듯이 무거웠다. 작은 외삼촌의 가족이 마주했을 황망함과 비통함은 감히 헤아리기 조차 어려웠다.
나는 한 달 더 울산에 머물며 엄마 곁을 지켰다. 그저 곁에 있는 일,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나서고, 불면의 밤을 동행하는 일이 나의 몫이었다. 어느 화요일 오후, 작은 외숙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주저앉듯 울음을 터뜨리셨다. 몸을 떨며 격앙된 목소리로 흐느끼는 엄마를 부축하던 순간, 나는 차갑게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아버지 병환 때를 대비해 준비해 놓은 우황첨심원을 챙겨서 급히 콜택시를 불러 소생실로 향할 수 있었다. 지난 일요일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작은 외삼촌이 이제는 세상에 없다는 사실은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한바탕 소낙비 같았다. 미리 준비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다. 그 빗줄기는 삶을 흔들어 놓고, 남은 자들의 발밑을 질퍽하게 만든다. 그 진창 위에서 어떻게든 하루를 살아내야 했다. 때로는 차라리 '나슨해진 잊음'속에 스스로를 두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너무 단단하게 붙들고 있으면 숨이 막히니, 느슨하게 풀어놓아야 겨우 견딜 수 있었다.
잊음은 잊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잊히는 것이다. 애써 붙들지 않아도, 시간은 매듭을 헐겁게 만들어 조금씩 풀어낸다. 그 과정을 어머니는 '나슨해졌다'라는 단어로 표현하신 것이다. 그 말에는 삶의 무게가 녹아 있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슬픔도, 기쁨도, 애틋했던 기억이 모두 풀려나간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는 건 끝내 붙들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뿐이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나이를 먹으니 마음도 헐거워진다'라며 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셨다. 나는 그 한숨 속에서 세월의 체념과 지혜를 동시에 느꼈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영영 잊을 수는 없지만, 기억은 조금씩 흐려지고, 슬픔은 언젠가 잊힌다. 그것이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준 유일한 선물인지도 모른다.
가을 하늘은 높고 바람은 차다. 바람결에 실려오는 공기만으로도 마음이 시리게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잊음이 나슨해진다는 건, 결코 완전히 잊어버린다는 뜻이 아니다. 풀려난 매듭이 바람에 흔들리듯, 기억도 흘러가다 다시 돌아오고, 아픔도 엷어지다 다시 짙어진다.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삶을 이어간다.
아버지의 부재와 작은 외삼촌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여전히 내 안에서 완전히 가시지 않은 슬픔이다. 그러나 나는 그 슬픔을 단단히 움켜쥐기보다는, 나슨해진 잊음 속에 잠시 맡겨 두려 한다. 그래야 숨이 트이고, 그래야 다시 걸음을 옮길 수 있다. 인생의 이별은 언제나 불시에 찾아온다. 그 예고 없는 파도 앞에서 우리는 부서질 듯 휘청이지만,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는 다시 잔잔한 물결이 일어난다. 구름이 흘러가듯, 삶도 그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