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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삶의 등반

by 박수진


남편은 산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산에 미쳐 있다. 한 달에 세 번, 아니 다섯 번은 꼭 높은 산에 오른다. 평일에도 짬을 내서 산을 가고, 쉬는 날에도 어김없이 배낭을 챙긴다. 등산용 옷이며 장비가 남편의 필수품인데, 문제는 산에 다녀온 후의 풍경이다.


등산에서 돌아온 남편은 땀에 젖은 옷가지를 빨래 바스켓에 쏟아붓는다. 그 순간 바스켓은 가득 차서 넘치고, 내가 마주한 광경은 진정한 빨래 산더미가 된다. 등산복, 고어텍스 구스재킷, 땀에 젖은 양말, 기능성 내의까지. 세탁기로 돌리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산을 다녀온 그가 가벼운 몸과 맑은 얼굴로 돌아올 때마다 나는 묻는다. 산은 어땠어요? 그러면 남편은 늘 같은 대답을 한다. 좋지. 산이 주는 힘이 있잖아.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다. 산이 주는 힘, 그걸 나는 잘 모르지만, 대신 산이 남긴 빨래의 힘은 아주 잘 느끼고 있다.


빨래를 세탁기에 돌려놓고 가끔 생각한다. 남편이 산을 사랑하는 것만큼 나도 어떤 것을 그렇게 사랑해 본 적이 있었을까? 가끔은 남편의 열정이 부럽기도 하다. 매번 새로운 산을 찾아 떠나고, 그곳에서 에너지를 얻어오는 그 모습이 어딘가 멋있게 느껴진다.


빨래가 마르고 산뜻한 등산복이 옷걸이에 걸리면, 남편은 다시 배낭을 꾸릴 것이다. 또 다른 산으로 떠나겠지. 남편이 돌아오면 또 빨래가 산더미처럼 쌓일 것이고, 나는 그 속에서 작게 한숨을 쉬다가 다시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릴 것이다. 산이 주는 힘을 느끼는 남편, 그리고 산더미 같은 빨래를 감당하는 나. 아마도 우리 둘 다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등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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