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건 인내심을 요구한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평소보다 길어진 배차간격이 초조함을 몰고 왔다. 11시 30분에 오기로 한 급행버스는 감감무소식이었고, 시계는 이미 11시 4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러다 SRT를 놓치면 어쩌지?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최악의 시나리오가 스쳐 지나갔다. 간신히 도착한 버스에 몸을 실은 건 12시 13분. 친정오빠는 어디쯤 갔냐며 계속 전화와 문자를 보냈다. 예전 살던 동네 옥동이라고 하자 기차표를 취소하고 돌아오라고 했다. 일단 알아서 하겠노라 답했지만, 내내 마음이 조여왔다. 저녁 시간 열차표까지 미리 결제한 상황에서도 긴장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버스는 더디게 움직였다. 도로 위 신호등마다 멈추는 버스는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고, 시간은 마치 나를 비웃는 듯 무심히 흘렀다. 울산역에 가까워질수록 시계는 더욱 잔인하게 돌아갔다. 1시까지 도착해야 했지만, 급행버스에서 내린 순간 시계는 이미 1시 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SRT 출발 시간까지 단 2분.
그 순간 머릿속은 단순해졌다. 시간을 원망하거나 계산하는 대신, 내 두 다리와 싸우기로 했다. 가방을 단단히 메고, 울산역 안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으로 방향을 틀며 발끝에 힘을 모았다. 달리는 내내 안내방송이 열차 출발을 알리며 나를 더 재촉했다.
“곧 출발합니다.”
가슴은 터질 듯 뛰었고, 다리는 뻐근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플랫폼에 도착하자마자 마지막 남은 힘으로 몸을 던지듯 열차에 올라탔다. 그 순간, 문이 닫혔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좌석에 앉아 가쁜 숨과 기침을 고르며 창밖을 바라봤다. 열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풍경이 서서히 뒤로 흘러갔다. 아슬아슬했던 몇 분의 차이가 떠올랐다. 그 몇 분이 하루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었지만, 나는 간신히 시간을 이겼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승리가 마치 큰 성취처럼 느껴졌다. 시간은 종종 우리의 적처럼 보인다. 언제나 부족하고, 빠르게 지나가며, 때로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오늘, 나는 그 시간을 넘어섰다. 내 두 다리와 의지가 시간의 흐름을 잠시나마 이겨낸 것이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가능성을 다시 확인한 순간이었다. 우리가 시간 앞에서 속수무책처럼 보일지라도, 진짜 중요한 건 그 순간 우리의 반응이다. 시간과의 싸움은 늘 버겁지만, 긴장과 도전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열차는 속도를 올리며 창밖 풍경을 빠르게 바꿨다.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시간은 우리를 끊임없이 시험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시험을 통과하게 해주는 건 다름 아닌 우리의 발걸음이다.
오늘 나는 시간을 이겼다. 그 몇 분의 경주에서 얻은 건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나 자신을 더 믿게 된 작은 용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