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참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분당 수내동에 위치한 병원으로, 그곳은 내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인권분만을 실천한다는 병원의 철학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의사 선생님의 따뜻한 태도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던 날 나는 엄청난 고통으로 힘들었지만, 의사 선생님은 우리에게 웃음을 권하며 남편에게 말했다.
"아빠가 아기에게 첫 노래를 선물해 주세요. 생애 첫 순간을 기념하는 좋은 노래를요." 남편은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익숙한 멜로디를 꺼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그 순간 웃음으로 가득 찼다. 간호사들도 의사 선생님도 나도 웃었다. 아이는 작은 노래를 배경으로 첫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은 마치 "나 여기 왔다!"라고 외치는 선언 같았다. 그날의 장면은 내 기억 속에서 생생히 살아 있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은 단순히 새로운 생명이 시작된 시간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새롭게 시작된 첫 장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아이는 걸음마를 떼고,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순간을 함께 웃고 울며 보냈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그렇듯 사춘기는 예상보다 갑작스럽게, 그리고 격렬하게 찾아왔다. 아이는 예전처럼 나를 신뢰하지 않았고, 사소한 일이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때로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나오지 않기도 했다.
어떤 날은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나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화가 나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와의 거리감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문득 참산부인과가 떠올랐다.
아이가 태어나던 그 병원에서 우리의 시작을 보여주면 아이도 마음을 열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그래서 아이에게 병원 이야기를 꺼내며 그곳에 함께 가보자고 제안했다. 아이는 처음에는 시큰둥한 표정이었지만 결국 따라나섰다. 그런데 분당 수내동에 위치한 참 산부인과는 이미 폐업한 지 오래였다. 병원이 있던 자리에는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었고, 따뜻한 조명과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내 마음은 허탈함으로 가득 찼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성이던 그때, 아이가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엄마가 날 얼마나 기다렸는지는 내가 다 알아."
그 한마디에 나는 울컥했다. 사춘기 속에서도 아이는 여전히 나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병원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나눈 기억이라는 사실을 아이가 가르쳐 준 셈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남편이 불렀던 노래를 마음속으로 다시 떠올렸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그 노래는 아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사춘기의 풍파를 겪으며 다시금 부모로 성장하는 나 자신을 위한 축하의 노래이기도 했다.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함께 쌓아갈 기억들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참 산부인과는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시작된 우리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