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농담

by 박수진


한창 운동에 재미를 붙이던 때였다. 헬스장에 가기 위해 운동복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다리가 가벼웠고, 몸도 개운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무거운 중량을 도전해 볼까? 아니면 유산소 운동을 늘려볼까? 머릿속으로 운동 루틴을 정리하며 걷던 길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발끝에 뭔가가 걸렸다. 중심을 잃고 앞으로 쏠리며 무릎이 땅에 부딪혔다. 순간적인 충격에 숨이 턱 막혔고, 무릎이 얼얼했다. 바닥을 짚고 천천히 일어나 보니 도로 위 작은 돌부리 하나가 보였다.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것인데, 그날따라 왜 하필 거기에 걸려 넘어진 걸까.


운동커녕 피가 흐르는 무릎을 부여잡고 되돌아와야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빠가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계셨다. 내가 절뚝거리며 들어오는 걸 본 아빠는 신문을 내려놓으며 물으셨다.


"괜찮냐?"


괜찮다고 대답하면서도 무릎의 쓰라림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자 아빠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네가 피가 날 정도면, 그 도로는 안 부서졌냐?"


나는 그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괜히 민망했던 것도 있고, 그게 아빠식의 걱정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다친 나를 보고 걱정하면서도, 괜한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었다. 마치 "괜찮아, 별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때는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오늘 그 농담이 불현듯 떠올랐다.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다가 문득, 아빠가 했던 그 말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그러자 마음이 아려왔다.


이제는 그 농담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작년 칠월에 세상을 떠나셨다. 췌장암이 깊어져 점점 말수가 줄었고, 마지막엔 거의 말도 하지 못하셨다. 그런데도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늘 말이 많았던 사람이다. 그것도 대단한 이야기나 교훈을 주는 말이 아니라, 시시 껄껄한 농담들. 날씨가 춥다며 "이 정도면 펭귄도 내복 입겠다."라고 하시거나, 내가 힘들다고 하면 "힘들 땐 힘을 들여야지!" 같은 말장난을 하셨다. 어린 시절엔 그런 농담이 유치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이제는 그 유치한 농담이 간절해졌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이별을 맞이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떠난 사람을 그리워할 때, 거창한 순간보다 사소한 기억이 더 크게 다가온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아빠와의 마지막 대화도, 아빠가 내게 남긴 깊은 가르침도 아닌, 단순한 농담 하나가 나를 이렇게 슬프게 할 줄 몰랐다.


그날 넘어진 길을 다시 걸어본다. 이제는 돌부리가 보이면 피해 갈 수도 있고, 조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빠 없이 맞는 나의 삶에는 예상치 못한 돌부리가 여전히 많다. 그런 순간마다, 아빠가 건넸던 시시한 농담이 떠오를 것 같다.


"네가 피가 날 정도면, 그 도로는 안 부서졌냐?"


나는 그 농담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또 한 번 피식 웃는다. 눈물이 날 것 같은데도, 아빠의 말장난 덕분에 오늘도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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